[한동하의 식의보감] 능금 대신 ‘사과’도 굿…언제 먹든 약
[한동하의 식의보감] 능금 대신 ‘사과’도 굿…언제 먹든 약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3.01.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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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필자는 어렸을 때 들에서 돌사과를 따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시중에서 파는 사과에 비해 크기가 작고 신맛이 강했지만 그래도 먹을 만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돌사과라고 불렀던 과일은 바로 야생능금이었던 것 같다. 이번 칼럼에서는 토종사과인 능금의 기록을 통해 사과의 효능을 알아보자.

사과(沙果)는 옛 문헌에 주로 내자(柰子)나 임금(林檎)이란 이름으로 쓰였다. 추자(楸子)나 빈파(頻婆)라는 이름도 있다. <본초강목>의 내(柰) 편에서는 ‘내(柰)와 임금(林檎)은 같은 부류에 다른 종이다’라고 하면서 사과의 종류로 다양한 이름들을 나열하고 있다. 요즘 중국에서는 사과를 평과(苹果)라고 부른다.

사과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명나라 때의 <야채박록>에는 사과나무를 사과자수(沙果子樹)라고 했는데 ‘열매는 오얏과 비슷한데 매우 크고 맛은 달면서 약간 시다. 빨갛게 익은 과일을 따서 먹는다’고 했다. 청나라 때의 <식물고>에는 ‘추자(楸子)의 맛은 달고 시며, 사과(沙果)보다 작다’고 했다.

조선의 <내의원식례>에는 평안과 함경감영의 진상품으로 사과(沙果)가 나온다. 또 <정조실록 20년(1797년)>에는 ‘생리(生梨), 임금(林檎), 사과(沙果), 유월도(六月桃) 합쳐서 1합(盒)이다’라는 기록을 보면 당시 개량종 사과가 유입되면서 임금과 사과를 구별했던 것 같다. 이것을 보면 사과(沙果)라는 이름도 꽤 오래전부터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현대에 저술된 <중약대사전>에서는 내자(柰子)를 사과의 일종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내자는 <동의보감(1610년)>에 ‘먿’ 혹 ‘농배’라고 해서 요즘 사용하지 않는 한글 이름이 적혀있다. 심지어 조선의 소아과 전문서인 <급유방(1749년)>에서는 내자를 기록하면서 기존 서적의 효능을 적고 난 말미에 ‘어떤 과일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정리해보면 우리가 부르는 ‘능금’이란 이름은 바로 임금(林檎)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토종사과다. 우리가 요즘 먹는 사과는 1900년경 미국인 선교사를 통해 들어온 외래종으로 능금나무는 현재 멸종위기종에 속해 있다.

내과와 임금의 맛은 서로 달랐다. 내자는 <본초강목>에 ‘맛은 쓰고 성질은 차고 독이 조금 있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성질이 차고 서늘하며 맛은 쓰고 떫고 독이 없다’고 했다. 내자의 맛이 쓰고 떫다고 한 것을 보면 사과의 맛과는 거리가 멀다. 반대로 임금을 보면 <본초강목>에서 ‘맛은 시고 달며 성질은 따뜻하고 독이 없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시고 달며 독이 없다’고 했다. 이것을 보면 임금이 요즘 사과와 더 가까운 맛인 것 같다.

사과에는 건강에 이로운 영양성분이 풍부하다. 특히 껍질에 많아 깨끗하게 씻어 껍질째 먹는 것이 좋다. 단 씨에는 독성이 있어 먹지 말아야 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따라서 사과의 효능으로 임금(林檎, 능금)의 기록을 주로 살펴보겠다. 능금은 갈증을 멎게 한다. <동의보감>에는 ‘소갈(消渴)을 멎게 한다’고 했다. 능금(사과)에는 구연산과 사과산과 같은 유기산이 풍부해 신맛이 난다. 이러한 신맛은 침의 분비를 늘리면서 갈증을 줄이고 피로 해소에도 좋다. 이에 과거에는 먼 여행을 떠날 때 능금 말린 것을 챙겨서 여행 중 갈증과 피로를 줄이기도 했다.

능금은 곽란(霍亂)으로 인한 설사, 복통에 좋다. <의학입문>에는 ‘이질(痢疾), 설정(洩精), 곽란(霍亂), 복통(腹痛)을 멎게 한다’고 했다. <본초강목>에는 특히 ‘설사가 멎지 않는 증상에는 반쯤 익은 능금 10개에 물 2되를 넣고 1되가 될 때까지 달인 다음 능금과 함께 먹는다’고 했다.

능금(사과)에는 수용성 식이섬유인 펙틴이 풍부해 대장건강에도 좋고 설사를 진정시킨다. 위장의 점막을 보호하는 효능도 있어서 소화불량을 예방한다. 능금(사과)의 펙틴은 껍질에 많기 때문에 깨끗하게 씻은 사과를 껍질째 먹는 것이 좋다.

곽란을 치료할 때는 푸른색 능금을 사용한다. <동의보감>에는 ‘푸른 것은 곽란으로 토하고 설사하는 것을 치료하는 데 묘한 효과가 있다. 삶아서 즙을 내어 마시거나 씹어서 먹는다’고 했다. 이때 푸른색은 종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덜 익은 능금을 의미한다.

능금은 기침, 가래를 제거한다. <의학입문>에는 ‘기(氣)를 내리고 담(痰)을 삭인다’고 했다. 보통 기침은 상기가 되면서 나타나는데 능금이 기를 내리면서 담을 삭히는 것은 기침에도 좋다는 것이다. 실제로 능금(사과) 껍질에 함유된 퀘르세틴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면서 폐기관지를 강화시켜 오염물질로부터 폐를 보호한다.

능금은 감기 증상에도 사용했다. <본초강목>에는 ‘말린 것을 상한(傷寒)을 치료하는 약에 넣는데, 임금산(林檎散)이라고 한다’고 했다. 능금은 상한(傷寒, 감기)이나 온역(溫疫, 전염성 질환)을 치료하는 처방에 넣기도 했는데 약에 넣을 때는 절반 정도 익은 것으로 맛이 쓰고 떫은 상태의 것을 사용하라고 했다.

능금(사과)을 생으로 먹으면 감기예방에도 좋다. 능금(사과)에는 비타민C가 풍부한데 열을 가하면 파괴되기 때문에 비타민C를 섭취하기 위해서는 생으로 먹어야 한다.

능금은 많이 먹지 말도록 했다. 부작용으로 <본초강목>에는 ‘많이 먹으면 사람의 온갖 맥이 약해진다. 많이 먹으면 열이나 냉담(冷痰)이 발생하여 기의 운행이 껄끄러워져 자꾸 잠들게 하거나 부스럼이 생기게 하고 온갖 맥이 막히게 한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능금의 부작용을 이용해서 불면증까지 치료했다. 본서에서는 ‘잠들지 못하는 것을 치료한다. 많이 먹으면 잠을 잘 자게 된다’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의 개량 사과를 먹고서 이러한 능금의 부작용을 경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능금의 씨는 먹지 말고 뱉어내야 한다. <본초강목>에는 ‘능금의 씨를 먹으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고 했다. 실제로 능금(사과)의 씨에는 독극물 중 하나인 아미그달린이라는 청산배당체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능금(사과)의 씨를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안 된다. 보통 매실, 살구, 복숭아, 사과 등 장미과 식물의 과일의 씨앗에 아미그달린이 많다.

서양에는 ‘사과를 매일 하나씩 먹으면 의사 볼 일이 없다’는 속담이 있다. 동양의 옛날에는 ‘능금을 즐겨 먹는 자는 약방에 갈 일이 없다’라는 속담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능금을 먹을 수 없지만 사과로 대신해도 무방하다. 사과는 아침에 먹든 저녁에 먹든 언제나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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