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미끌미끌 느릅나무 껍질…‘유백피(楡白皮)’는 식량이자 약
[한동하의 식의보감] 미끌미끌 느릅나무 껍질…‘유백피(楡白皮)’는 식량이자 약
  • 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3.02.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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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느릅나무라고 하면 그냥 산속의 나무이름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비염을 앓고 있는 중년층이라면 비염의 특효약으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한때 느릅나무의 뿌리껍질 추출물이 비염환자들의 코세척제로 만들어져 많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느릅나무 껍질의 효능에 대해 알아보자.

느릅나무는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활엽 교목으로 높이가 20m까지 자라는 큰 나무다. 한자로는 유(楡)라고 한다. <본초강목>에는 ‘유(楡)는 즙이 부드러워[兪柔] 유(楡)라고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느릅나무를 간혹 코나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나무나 뿌리의 껍질을 끓이면 끈적이는 콧물 같은 점액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코질환에 좋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느릅나무 중에서도 약용하는 부위는 주로 껍질이기 때문에 주로 유피(楡皮) 또는 유백피(楡白皮)라고 한다. 유백피는 곁 껍질의 검은색 코르크층을 벗겨 낸 것을 말하는데 흰색보다는 밝은 갈색에 가깝다.

유근피(楡根皮)는 느릅나무의 뿌리껍질을 말한다. 하지만 한의서에는 주로 나무의 껍질인 유백피를 약용부위로 설명하고 있다. 간혹 유근피에 대한 언급도 있지만 흔하지 않다. 하지만 나무껍질과 뿌리껍질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유백피의 기록을 통해 느릅나무의 효능을 설명하고자 한다.

느릅나무 껍질(이하 유백피)은 맛이 달고 성질은 평하고 매끄러우며 독이 없다. 과거에는 흉년이 들었을 때 구황식품으로도 먹었다. 이때는 느릅나무의 껍질뿐 아니라 갓 싹이 난 열매 꼬투리로 죽이나 국을 끓여 먹었다. 묵은 열매는 장(醬)을 담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유백피는 대소변을 통하게 한다. <본초강목>에는 ‘대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을 치료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사기(邪氣)를 제거한다’고 했다. 유백피는 성질이 매끄럽기 때문에 아래로 잘 내려가게 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대소변을 원활하게 해서 잘 배출시킨다. 이에 변비나 소변불리에 효과가 있다.

유백피는 특히 오림(五淋)에도 좋다고 했다. 오림은 다양한 원인에 의한 소변불리를 말한다. <식의심감>에는 유백피병(楡白皮餠, 유백피떡)이 나오는데 ‘임병으로 아랫배가 뭉치듯 아프며 소변이 시원스럽지 않는 경우를 치료하려면 유백피떡을 먹는다’고 했다. 유백피 2냥을 달인 물로 밀가루 4냥을 반죽해서 요리를 해 끓여 먹으면 아주 좋다고 했다.

<의본>에는 쌀가루와도 섞어 먹기도 했는데 ‘유백피의 성질은 매끄러워서 곡물가루와 섞으면 위를 보익하고 대소장을 이롭게 한다. 흉년에 대비하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섭생을 하고자 하는 이가 이것을 먹으면 오곡이나 기름진 음식보다 낫고 병도 또한 다스려 오래 살 수 있다’고 했다.

이를 보면 유백피떡(유백피면)은 전형적인 식치(食治) 외에도 다양한 증상에 활용이 가능할 것 같다. 평소 염증이 반복되거나 대소변이 잘 나가지 않거나 종기가 심한 경우 또는 칼국수나 빵을 만들 때도 유백피 달인 물로 만들면 좋겠다.

 

느릅나무 껍질인 유백피는 예로부터 배고픔을 잊게 하는 식량이자 변비, 부종, 상처 등 몸의 다양한 증상을 완화하는 약으로 활용됐다(사진=한동하한의원 제공)

유백피는 부종에 좋다. <본초강목>에는 ‘몸이 갑자기 붓는 증상에 유백피를 가루 내어 쌀과 함께 죽을 쑤어 먹으면 소변이 잘 나오면서 부기가 사라진다’고 했다. 유백피는 소변이 잘 나가게 하기 때문에 부종에 좋다고 할 수 있다. 곡물과 함께 먹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달여서 먹어도 좋다.

유백피는 종기를 없앤다. 종기에는 특별하게 뿌리껍질을 활용했는데 <본초강목>에는 ‘옹저(癰疽)와 발배(發背)에 유근피(楡根皮, 느릅나무 뿌리껍질)를 찧은 다음 참기름에 개어 붙어주면 신묘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의휘>에는 ‘배창(背瘡)에 유근피로 떡을 만들어 붙인다’고 했고 <고사신서>에는 ‘종기가 터진 후 농을 흡수하려면 유근피를 붙이는 것도 역시 좋다’고 했다. 또 <주촌신방>에는 ‘종기가 터진 후 유근피로 심을 만들어 꽂으면 창구가 막히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에는 화상으로 문드러진 증상에 생 유백피를 질게 찧어 발라주기도 했는데 이러한 모든 효능은 소염작용과 함께 일정 정도의 항균작용 때문에 나타나는 효과다. 항생제나 소염제를 써도 아물지 않고 덧나는 수술 봉합부위에 환자·보호자가 유근피가루를 뿌려서 아물게 했는데 주치의가 도대체 무엇을 뿌린 것이냐며 놀랐다는 일화도 있다.

최근의 연구논문을 보면 유백피(혹은 유근피) 달인 물은 욕창에 의한 상처관리, 여드름, 아토피피부염에도 효과적이라고 나와 있다. 유백피는 끓이면 점액이 많이 나오는데 <본초정화>에는 ‘유백피를 물기 있는 채로 찧으면 풀처럼 끈끈한데 기와나 돌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접착력이 강하다’고 했다. 이것을 보면 유근피에 함유된 특정 생리활성물질이 피부나 점막을 보호하면서 염증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방합편>에는 유백피즙을 내는 방법이 나온다. ‘유백피 껍질을 벗겨 안쪽의 흰 부분을 취해서 햇볕에 말려 가루 내어 쓰는데, 즙을 쓰는 것이 더 편하고 효과도 좋다. 유백피를 늙은 나무든 젊은 나무든 상관없이 벗겨 찧어서 오지그릇이나 나무통에 담아 물을 부어 담가서 즙을 취한다. 만일 즙을 다 썼으면 물을 더 붓고 젓는데 즙이 한없이 나온다’고 했다.

유백피는 관절염에도 좋다. <방약합편>에는 ‘관절을 부드럽게 한다. 그리고 부종과 통증을 없앤다’고 했다. 유백피는 성질이 미끈거리고 부드럽기 때문에 관절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뇨작용과 함께 소염작용이 있어서 특히 관절이 많이 부으면서 통증이 나타나는 관절염에 도움이 될 것이다.

유백피는 코골이에도 좋다. <본초강목>에는 ‘호흡이 가쁘고 코 고는 소리가 멎지 않는 증상에는 유백피를 그늘에 말리고 불기운에 말린 다음 가루 내서 물에 넣고 엿처럼 될 때까지 달여서 복용한다’고 했다. 이것은 유백피가 기관지, 인후, 코점막의 염증과 부종을 안정시키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만성기침, 비염, 축농증에도 도움이 된다. 필자는 유백피(유근피)를 피부, 점막, 혈관, 관절 등 제반 염증에 무난하게 활용하고 있다.

유백피는 배고픔을 잊게 한다. <본초정화>에는 ‘오래 복용하면 곡식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게 된다’고 했다. <본초강목>에는 ‘흉년에 농부들이 껍질을 가지고 가루를 만들어 양식으로 삼아 먹는다’고 했다. 다이어트에 진심인 분들은 유백피 가루를 환으로 만들어 공복에 먹어볼 만하다. 과거에는 흉년이 들면 솔잎으로 연명을 했다. 그런데 솔잎은 탄닌성분이 많아 변비가 쉽게 생긴다. 그런데 이때 유백피 즙을 섞어 변비를 예방한다고 했다. 유백피가 변비에도 좋다는 효능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시중에 보면 유근피나 유백피 모두 쉽게 구할 수 있다. 보통 약용부위를 뿌리로 해서 유근피를 많이 사용하는데 유근피가 아니더라도 유백피도 좋다. 유백피는 과거 식량으로도 사용했을 정도로 약성이 부드럽다. 유백피는 잘만 활용한다면 그 어떤 약보다도 유용할 것이다. 미끈미끈 유백피는 식량이자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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