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혈우병(血友病)’…이제는 만성질환처럼 관리 가능해
희귀질환 ‘혈우병(血友病)’…이제는 만성질환처럼 관리 가능해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04.1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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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영실 강동경희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박영실 교수는 “혈우병은 결핍된 응고인자를 보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우리나라는 치료 여건이 좋고 보험이 잘돼 있어 유지요법이 잘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영실 교수는 “혈우병은 결핍된 응고인자를 보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우리나라는 치료 여건이 좋고 보험이 잘 돼 있어 유지요법이 잘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튼튼한 육체를 갖고 있는 이들은 겁이 상대적으로 없다. 작은 상처도 금방 회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상처에도 노심초사(勞心焦思)해야 한다면 어떨까. 이번에 다룰 ‘혈우병’은 작은 상처가 큰 상처로 번질 수 있는 질환이다. 혈우병환자들에게 상처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 고통이 커지는 질환인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혈우병환자들에게 ‘겁’이란 일종의 자기보호 장치인 셈이다.

세계혈우연맹(WFH)에 따르면 전 세계 혈우병환자는 약 20만명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2021년 기준 혈우병A환자는 1778명, 혈우병B환자는 446명으로 확인된다. 전 세계 환자수는 WFH에서 각 나라별로 레포트를 받아서 취합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는 더 많을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중증 혈우병은 진단시기가 빠르지만 경증의 경우 선천질환임에도 50대에 진단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실제 수치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혈우병의 경우 다른 희귀질환에 비해 다양한 치료제가 개발됐다는 점이다. 부작용이 적고 약물지속시간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유전자치료제’ 임상이 활발해지면서 완치에 한 발짝 다가섰다. 박영실 강동경희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와 만나 혈우병 치료의 최신지견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 혈우병의 종류 및 원인 유전자에 관해 설명 부탁한다.

혈우병은 중증출혈성질환이다. 혈우병에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응고인자 8번, 9번, 11번이 결핍에 따라 ▲혈우병A ▲혈우병B ▲혈우병C 등으로 구분된다. 그중에서도 혈우병A와 혈우병B의 발생빈도가 제일 높다. 이때 각각을 지정하는 유전자의 위치도 다르다. 혈우병A와 혈우병B는 X염색체에 존재하는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나타날 때 발생한다. 성염색체 열성유전을 하는 응고인자 8번, 9번이 결핍됐을 때 혈우병A, 혈우병B가 되는 것이다. 반면 나머지 응고인자는 상염색체 열성유전이 대부분이다.

- 혈우병 진단은 상대적으로 간단하다고 들었다.

혈우병은 응고인자수치검사를 통해 진단한다. 혈우병은 진단보다는 의심이 어렵다. 출혈성 경향이 유난히 뚜렷하거나 가족력이 있다면 기본적인 검사와 혈액 응고시간 등을 확인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후 그에 따라 의심되는 응고인자검사를 하면 명확하게 진단된다.

이때 혈우병A와 혈우병B는 성염색체 열성유전임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아버지가 혈우병환자일 경우 딸이 보인자가 된다. 보인자라는 것은 염색체 2개 중에 1개에만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로 증상이 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확인되는 출혈성 경향에 따라 수치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수치도 보인자에 따라 다양하게 확인된다. 또 20~30% 환자에서는 가족력 없이 돌연변이로 발생할 수 있다.

- 응고인자수준에 따라 중증도가 나뉘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혈우병A와 혈우병B를 예로 들겠다. 중증은 혈액응고인자 농도가 1% 미만인 경우를 나타낸다. 혈액응고인자 농도가 1% 미만이면 일상생활에서 자연출혈의 빈도가 높다. 근육, 관절 등의 깊은 부위에 출혈이 생길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만일 동일 관절에 2번 이상 출혈이 발생하면 염증이 발생, 관절염이 발생한다. 관절염은 혈우병에서 굉장히 흔하게 발생하는 합병증으로 환자들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고 관절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 혈우병은 완치 가능한 질환인지.

안타깝게도 혈우병은 아직까지 완치가 어려운 질환이다. 따라서 혈우병은 결핍된 응고인자를 보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과거에는 출혈 시 응고인자를 보충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출혈 발생 전 응고인자를 주기적으로 맞아 지혈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치료목표다. 현재 WFH에서도 환자들에게 유지요법을 권고하고 있다.

이때 같은 치료를 진행하더라도 환자별로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환자에 따라 약제를 선택한다. 소아의 경우에는 어른보다 대사가 빨라 약제의 반감기가 짧기 때문에 더 잦은 투여가 필요할 수 있다.

- 혈우병치료제는 종류가 다양하다.

혈우병치료제가 막 개발됐을 당시 사람의 혈장을 추출한 ‘혈장제제’가 주로 사용됐다. 현재는 정제 기술이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에는 혈장제제로 인한 합병증이 많이 발생했다. 최근에는 ‘유전자재조합제제’가 개발되면서 치료제 반감기를 연장시켰다. 실제로 주 3회 투여에서 2번만 투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제가 개발됐으며 주 1회 사용되는 제제도 최근 미국 FDA 허가를 받았다.

혈우병치료제는 정맥주사를 통해 투여된다. 스스로 정맥주사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직접 주사하는 것이 좋다. 매번 병원에 방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아 혈우병환자의 경우 현재는 부모님들이 주사 교육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고 환자가 성인이 되면 스스로 주사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만 3세 정도라면 아이가 아플 때 바로 주사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교육을 받고 주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정맥주사의 어려움을 없애기 위해 피하주사제제도 개발돼 있고 다양한 제제가 개발 중이다.

- 혈우병치료제가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고 들었다.

혈우병에서 치료제가 듣지 않는다는 것은 ‘항체’와 연관돼 있다. 응고인자에 대한 항체가 생겨 해당 응고인자를 사용할 수 없는 ‘중화항체’가 생긴 것이다. 이런 경우 일반적인 응고인자제제를 사용할 수 없어 우회인자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우회인자는 아무래도 응고인자보다는 지혈효과가 부족할 수 있다. 약에 따라서는 반감기가 짧아서 수 시간마다 투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일단 출혈이 생기면 지혈효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약제도 고가이기 때문에 조금 더 주의해서 봐야 하다 보니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상당히 많다.

- 혈우병환자들은 응급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눈으로 보이는 출혈은 수월하게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관절출혈이나 근육출혈은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특히 표적관절이 생기면 쉽사리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특정 관절에 출혈이 2번 이상 생기면 해당 관절은 표적관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표적관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관절출혈이 발생하면 그 이후에는 유지요법을 통해 관절이 나빠지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좋은 약제들이 개발돼 환자들의 삶의 질이 올라간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혈우병환자들이 피했으면 하는 운동이 있다. 격투기, 축구 등 부딪힘이 많은 운동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은 축구 등의 운동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운동 전 응고인자를 충분히 맞고 진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 2020년에 WFH 가이드라인이 업데이트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당 가이드라인의 시사점은.

WFH에서 일정한 주기는 아니지만 트렌드 변화에 따라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2020년 이전까지만 해도 ‘혈우병치료에 유지요법이 중요하다’ 정도로만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유지요법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 개인별로 약의 효과나 약물 역동학적인 특징이 다르니 환자 개인 맞춤으로 효과적인 유지요법을 할 수 있도록 권고하는 것 또한 큰 변화다. 이때 유지요법의 효과는 만성적인 합병증이나 사회적인 부담, 삶의 질에 효과가 있음이 여러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 국내 학회에서도 WFH의 가이드라인과 동일하게 치료를 진행하는지.

우리나라는 치료 여건이 좋고 보험이 잘돼 있어 유지요법이 잘 진행되고 있다. 다만 아직 보험적용이 가능한 용량에는 한계가 있다. 일부 환자들의 경우에는 유지요법에서 보험이 적용되는 용량보다 많은 용량이 필요하다. 표적 관절이 발생했거나 일상생활이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더 충분한 용량을 할 수 있게 개선이 돼야 한다. 따라서 학회에서도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동아시아 혈우병 포럼이 4월 6일과 7일 우리나라에서 개최됐다.

그동안 2년에 한 번씩 개최하다가 코로나로 3년 정도 개최하지 못했었는데 주변 동아시아 4개국과 초청 연자까지 11개국 정도가 모여서 진행하게 됐다. 포럼에서 여러 다양한 연구들의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고 나라별로 개인 맞춤형 유지요법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발표돼 좋았다. 또 결국 혈우병의 완치에 이를 수 있는 한 가지라고 생각되는 유전자 치료 주제에 대해 WFH 부회장(Vice President)이 초청강연을 진행했는데 굉장히 의미 있었다.

- 현재 유전차치료제가 개발 중이라고. 

지금까지의 모든 치료는 혈우병 자체를 치료하는 것이 아닌 출혈성 경향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혈우병은 유전자돌연변이로 발생하기 때문에 유전자치료가 곧 완치로 향하는 길이다. 현재 여러 유전자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8인자 치료가 유럽에서 승인됐고 9인자 치료는 미국과 유럽에서 승인된 상황이다. 유전자치료는 결국 장기간 보고가 필요한 연구이기 때문에 기대되는 점도 있지만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

- 마지막으로 혈우병환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가령 외상 이후 CT 결과에 특이소견이 없었고 응고인자도 투여했지만 며칠 뒤에 뇌출혈로 응급실을 방문하는 경우가 있다. 현재 다양한 약제 출시 및 보험기준 확대 등으로 우리나라 혈우병환자들의 삶의 질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또 평균수명도 정상인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까지 향상됐다. 앞으로 더 나아진 치료환경을 위해 의료진, 학회 및 많은 기관들이 노력하고 있으니 희망을 갖고 늘 건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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