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신생아선별검사’로 아픈 아이들에게 미소 지을 권리를
[기자의 눈] ‘신생아선별검사’로 아픈 아이들에게 미소 지을 권리를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05.2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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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치료제가 있는 리소좀축적질환에 관한 선별검사를 2018년 여러 학회에서  급여 신청을 건의했지만 5년째 제자리걸음이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2018년 국내 여러 학회에서 치료제가 있는 리소좀축적질환에 관한 선별검사 급여 신청을 건의한 바 있지만 5년째 제자리걸음이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아름다운 멜로디가 적막한 밤의 공기를 감싼다. 눈을 감고 듣자니 마음 한쪽이 뭉클해진다. 눈부신 태양 아래 저 소리를 들으면 어떨까.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본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그녀에게 태양이란 목숨을 갉아먹는 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녀는 ‘색소성건피증’을 앓고 있다. 색소성건피증은 희귀 상염색체 열성유전질환으로 자외선에 의한 상해를 치료하는 능력이 결핍돼 있다. 이 이야기는 사실 코이즈미 노리히로 감독의 2006년 작품 ‘태양의 노래’ 줄거리다.

기자가 가장 쓰기 어려운 질환이 있다. 바로 ‘희귀·난치성질환’이다. 워낙 환자도 적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자책과 책망, 잠시나마 가졌던 희망도 막대한 치료비 청구서를 보면 금세 사그라진다.

가혹했다. 의료기술이 날로 발전해 희귀·난치성질환치료제가 하나둘씩 개발되고 있지만 막대한 치료비로 일반 사람들은 엄두를 못 낸다. 더구나 그들 대부분이 늦게 진단되는 ‘진단방랑’을 겪었다.

다행히 정부가 희귀·난치성질환자의 치료비 부담을 10%로 경감해주는 ‘산정특례제도’, 연간 의료보험이 적용된 총 의료비의 환자부담액을 소득 구간에 따라 차등화해 일정 금액 이상을 경감해주는 ‘본인부담상한제도’ 등을 추진 중이지만 턱없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또 희귀질환은 대부분 선천성유전질환으로 진단시기가 늦어질수록 병세는 악화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신생아선별검사(신생아스크리닝)를 통해 희귀·난치성질환의 조기진단을 적극 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학생일 당시 제가 앓고 있는 병이 치료제가 없는 희귀 근육병으로 20~30살까지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도 병원은 찾았지만 특별한 답은 얻지 못했습니다. 치료제가 없어 막연하게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던 제가 지금은 남들과 같은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폼페병환우회 임지나 회장 수기 중 한 문구다. 폼페병의 경우 신생아선별검사에서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면 폼페병검사가 가능하다. 신생아선별검사는 갓 태어난 신생아에게 시행하는 검사로 질환의 조기발견·치료를 위해 시행한다. 신생아들은 대부분 건강해 보이지만 질병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어 조기에 발견하지 않으면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희귀·난치성질환을 신생아선별검사에 포함시키자는 뜻이 아니다. ‘치료제’가 존재하는 항목을 넣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희귀·난치성질환은 7000여개로 그중 5% 만이 치료제가 개발돼 있다.

대표적인 질환이 ‘리소좀축적질환’이다. 리소좀축적질환은 시간이 흐를수록 병세가 악화되는 진행성질환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비가역적인 손상, 조기사망 등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에서 치료 가능한 리소좀축적질환으로 산정특례에 등록된 환자수는 2022년 8월 기준 총 455명으로 파브리병 282명, 뮤코다당증(1형,2형) 92명, 고셔병 45명, 폼페병 36명이다. 알려진 유병률과 비교해 보았을 때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실제로 한국폼페병환우회에서는 국내 폼페병환자를 1285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치료제가 개발된 희귀질환은 검사를 통해 조기에 병을 발견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61개의 신생아선별검사대상질환(RUSP)에 리소좀축적질환인 폼페병, 뮤코다당증 등을 포함했으며 대만 역시 26개 유전질환에 관해 신생아선별검사를 진행 중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8년 여러 학회에서 치료제가 있는 리소좀축적질환에 관한 선별검사 급여 신청을 건의했지만 5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국민 역시 치료제가 있는 희귀·난치성질환에 관한 신생아선별검사를 찬성하고 있다. 최근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일반 국민 1022명을 대상으로 한 신생아선별검사 인식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이때 응답자 83.1%가 ‘치료제가 있는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한 신생아 선별검사를 정부가 전적으로 지원하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연합회는 신생아선별검사의 필요성 및 정부지원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를 확인해 신생아선별검사 대상질환 확대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이번 조사를 진행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려면 그 아이의 가정 하나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이의 행복은 곧 미소며 웃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희귀·난치성질환자 모두 미소 지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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