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응급실 방랑…정부 ‘수용의무화’ vs 학회 ‘의료진부족’
반복되는 응급실 방랑…정부 ‘수용의무화’ vs 학회 ‘의료진부족’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06.0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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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70대 남성이 2시간 가까이 응급의료기관을 찾다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국민의힘과 정부가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를 개최, 원스톱응급시스템을 마련해 환자를 이송한 경우에는 수용을 의무화하기로 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5월 30일 70대 남성이 2시간 가까이 응급의료기관을 찾다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국민의힘과 정부가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를 개최, 원스톱응급시스템을 마련해 환자를 이송한 경우 수용을 의무화하기로 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5월 30일 비극적인 사건이 또 일어났다. 70대 남성 A씨가 용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70km 떨어진 의정부까지 2시간 가까이 헤매다가 구급차 안에서 생명을 잃은 것. A씨는 병원 11곳에서 거절당했으며 그중에는 권역외상센터, 응급센터 7곳도 포함돼 있다.

소위 ‘응급실 방랑’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두 달 전인 3월 19일 대구에서 10대 청소년이 병원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사망한 사건도 었다. 이번 사건과 유사하게 당시 10대 청소년 역시 2시간가량 돌아다녔지만 받아주는 병원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전수조사를 진행했고 4개 기관(▲대구파티마병원 ▲경북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에 행정처분을 실시했다.

결국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민의힘과 정부가 31일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를 개최, 원스톱응급시스템을 마련해 환자를 이송한 경우 수용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병상이 없는 경우 경증환자를 빼서 환자를 수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원스톱응급이송시스템을 마련해 환자 이송 단계부터 확인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며 “콘트롤타워로서 지역응급상황실을 설치해 중증도, 병원별 가용자원 현황 등을 기초로 이송과 정원을 지휘·관제하고 이를 통해서 수용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응급실 전문의 부재…환자들은 오갈 곳 잃는다

우리나라 응급실 방랑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119 구급대 1차 재이송 건수는 3만1673건, 2차 재이송 건수는 5545건으로 나타났다.

사유로는 전문의 부재가 31.4%로 가장 많았고 병상부족이 15.4%로 뒤를 이었다. 특히 병상부족에서는 응급실 부족이 3698건으로 가장 많았다. 세부적으로 입원실과 중환자실 부족이 각각 1128건과 870건이었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26.5%로 재이송 비율이 가장 많았고 서울은 15.3%, 부산 7.1%, 충남 6.5% 순이었다. 충남 지역은 2차 재이송 비율이 17.5%로 높았다.

당정협의회는 응급실 방랑문제의 원인을 ▲수술의사와 병상 부족 ▲경증환자로 인한 응급실 과밀화 ▲119 구급대와 의료기관 간 정보 공유체계 미흡 등을 꼽았다. 이에 문제 해결을 위해 ▲수술의사와 병상 확보 노력 ▲경증환자 응급실 과밀화 현상 해소 ▲119 구급대와 의료기관 간 정보공유체계 효율화 등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응급의료 이송 콘트롤타워인 ‘지역응급의료상황실’을 설치, 환자중증도와 병원별 가용자원을 기초로 환자이송과 전원을 지위·관제하도록 했다. 이밖에도 권역응급의료센터의 경증환자 진료를 제한한다. 센터는 응급환자 진료 전 중증도를 분류해 경증은 수용하지 않고 하위 종별 응급의료기관으로 분산하는 것을 의무화한다. 또 의사가 휴일에 응급환자 수술을 집도할 경우 추가수당을 지급하고 중증응급의료인력에 대한 특수근무수당도 마련하기로 했다. 119구급대 역시 경증환자를 지역응급의료기관 이하로만 이송하는 원칙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당정협의회의 방안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모든 정책이 ‘의료기관 확충’과 ‘응급의료기관 전원 금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 실제로 의료현장에서 가장 부족한 ‘의료인력 문제 해결’ 방안은 쏙 빠져 있다. 

복지부는 올해 3월 2023년부터 2027년까지 향후 5년간의 응급의료 정책방향을 담은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복지부는 ‘전국 어디서든 1시간 안에 중증응급환자 진료’를 목표로 중증응급의료센터를 50~60개소까지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권역응급의료센터를 40곳으로 대폭 늘리고 응급의료 역할을 한 만큼 확실한 보상체계를 구축해 중증응급환자 치료에 적극 나설 수 있게 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우선 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과 거부에 대한 세부기준 마련, 응급병상 인력 투자 등이 필요한데 이 같은 내용이 표함된 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을 확정해 수행 중”이라며 “이에 더해 단기 보완대책 추가와 응급의료기금 확대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의료현장에서 가작 부족한 의료진 부족에 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정작 의료진 부족에 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당정협의회의 발표에 대해 비판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의료진 “의료자원 부족이 가장 큰 문제”

정부는 ‘환자 수용 의무화’를 응급실 문제 해결책으로 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응급실 방랑 원인은 부적절한 의료전달체계와 의료진 부족 등이라고 지적한다. 

의료전달체계란 질병의 중한 정도에 따라 1차 의료기관 → 2차 의료기관 → 3차 의료기관 순으로 진료가 이뤄지도록 의료비에 차이를 둔 제도이다. 하지만 구조상의 문제, 의료분쟁의 급증, 국민의 높은 대형병원 선호도 등의 문제로 의료전달체계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이하 의사회)는 31일 성명을 통해 “구조적 문제들과 상황을 외면한 채 마치 응급실에서 일부러 거부한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응급의료진들을 희생양 삼아 공분을 돌린다고 예방가능한 응급, 외상환자 사망률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고 법적 처벌이 가시화될 때는 응급의료진들의 이탈이 더 가속화돼 응급의료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의사회는 이번 당정협의회 발표가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여전히 응급실 방랑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의료자원’ 부족에 있다고 지적하는 것. 의사회는 중증외상환자의 경우 최소한 중환자실과 응급외상수술팀이 갖춰져야 응급실에 수용할 수 있는데 이를 무시한 채 무조건 가까운 응급실에 환자를 이송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경증 응급환자 이원화 시스템과 관련해서도 큰 우려를 표했다.

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어디까지가 응급이고 어디까지가 경증인지는 치료를 해봐야 아는 것”이라며 “경증환자를 무작정 응급실에서 내쫓았다가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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