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신질환을 양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정신질환을 양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09.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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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신간]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김현아 지음/창비/304페이지/1만8000원
김현아 지음/창비/304페이지/1만8000원

유독 힘든 날이 있다. 올려다본 하늘은 푸르름은커녕 무채색이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감정의 둑이 한순간 무너졌다. 튼튼하다고 생각했던 마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갉아먹던 우울감이 결국 나를 집어삼켰다.

우리는 우울함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실제로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자들이 크게 증가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7년 68만169명에서 2021년 91만785명으로 4년 새 33.9%나 증가했다. 특히 20‧30대 ‘청년 우울증’환자의 증가 폭이 가장 커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울증뿐 아니라 정신질환은 초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자살 및 자해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정신질환에 관한 부정적 인식으로 환자들은 고립과 부적응,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딸이 어느 날 ‘양극성장애’를 진단받았다

이 책은 엄마이자 의사인 저자가 정신질환을 앓는 딸을 보살핀 과정을 기록한 숨 가쁜 여정이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담임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우울증 검사 결과 때문이었다. 우울척도와 자살척도가 너무 높게 나온 것. 문제는 우울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이는 ‘양극성장애’를 앓고 있었다.

저자는 이때 세상이 무너졌다고 한다.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고 믿었던 딸의 팔목에 수없이 그어진 칼자국을 목격한 순간 세계가 완전히 전복됐다. 딸에게 가장 잘 맞는 병원을 찾아다니고 보호병동에 딸을 입원시키고 다양한 치료법을 시도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다.

양극성장애에서 나타나는 우울증 시기의 증상은 우울증과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주요우울장애로 진단된 환자의 5~10%는 첫 진단 6~10년 후에 조증을 보이는데 이 경우 주요우울장애에서 양극성장애로 진단이 바뀌게 된다. 양극성장애란 흔히 조울증으로 불리며 들뜨거나 짜증스러운 기분 등이 1주일 이상 지속되는 조증 또는 증상이 가볍거나 짧은 경조증이 함께 있는 경우를 말한다.

양극성장애환자의 약 절반에서 첫 삽화가 우울증으로 시작되고 첫 우울증 삽화 이후 조증 삽화가 발생할 때까지 기간이 평균 6년 이상 걸린다. 때문에 많은 양극성장애환자가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기까지 오래 걸린다. 놀라운 사실은 우울증과 양극성장애를 감별하는 것은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에게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자에게 너무 가혹하다. 저자 역시 7년 동안 보호자와 한 명의 의료진으로서 딸을 지켜보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정신질환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익히 잘 알기에 그 시간은 더 가혹했을 것이다.

이 순간에도 정신질환자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질환 문제가 제대로 가시화되지 못한다. 일례로 미국에서 보고된 바에 따르면 양극성장애의 유병률은 평균 1~2%, 진단범위를 넓혔을 때는 6.4%에 육박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양극성장애 유병률은 2017년 기준 0.2%에 불과하다. 진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지표다.

정신적 문제는 누구나 언제든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정신질환을 가시화해 환자들이 낙인과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나 질환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치료받게 하는 사회적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저자는 ‘정신질환’이라는 인식 자체를 ‘뇌질환’으로 재편할 것을 제안한다. 실제로 정신질환은 뇌 속 신경세포 간의 연결회로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물론 그 가족들이 모두 떳떳하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첫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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