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형병원 지을 돈은 있고 임금인상은 곤란?
[기획] 대형병원 지을 돈은 있고 임금인상은 곤란?
  • 김치중 기자
  • 승인 2012.09.2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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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의료원 파업 장기화조짐…노사신뢰 상실

국내 최고 여성전문병원을 표방하고 있는 이화의료원이 노조파업이라는 돌발변수에 휘청거리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노조파업이 장기화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지난 9월5일 노조가 파업에 들어갔지만 의료원 측은 파업사태 해결을 위한 절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화의료원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파업에 대처한 교육’ vs ‘노조파괴 시나리오’

이화의료원 안팎에서는 전국사립대병원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임금문제가 해결되면 파업이 원만하게 마무리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지난 9월24일 국회에서 무소속 심상정 의원이 ‘산업현장 용역폭력 청문회’에서 “심종두 창조컨설팅 대표가 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이화의료원 중간관리자 대상 교육에서 ‘노조는 적이다’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 이화의료원은 2005년부터 창조컨설팅과 노무자문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화의료원 노조파업이 노사 간 신뢰상실로 장기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제공=이화의료원 노조)


심 의원에 따르면 심 대표는 지난 9월8일 이화의료원 중간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파업 개시 이후 중간관리자의 역할 및 파업대응방법’을 주제로 한 교육에서 “파업에 참가하려는 조합원이 있으면 자유의사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서 압박해야하며 조합간부가 파업참가를 독려하면 법률상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발언했다. 심 대표는 또 파업 도중 발생하는 세부상황에 대한 구체적 대처 및 갈등유도방법까지 강의했다.

노동계에서는 “창조컨설팅이 각종 불법행위를 동원해 영남대의료원, 서울성애병원, 광명성애병원 등 최근 7년 동안 14개 민주노조를 무너뜨렸다”며 “이화의료원이 15번째 희생양이 될 수 있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이화의료원 관계자는 “2005년 창조컨설팅과 일상적인 노무자문계약을 맺었지만 이번 파업과 관련해서는 별도계약을 맺지 않았다”며 “노조가 파업과 관계없이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모멸감을 주고 있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심 대표에게 교육을 요청했는데 약점을 잡히고 말았다”고 밝혔다. 또 “노조가 이 문제를 이슈화해 내부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노조의 입장은 달랐다. 노조 측은 단순교육이 아닌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다며 타결안을 내지 않고 교섭을 질질 끌면서 파업을 유도하고 파업 장기화를 획책하는 것이 창조컨설팅의 작전이라는 시각이다. 노조 측은 “결국 조합원들을 분열시켜 노조탈퇴를 종용하고 직장폐쇄, 용역깡패 투입, 무노동 무임금, 대량징계 등의 방법을 통해 민주노조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료원, 조기 파업해결 뜻 전혀 없어”

임미경 이화의료원노조 지부장은 “파업을 시작하면서 의료원 분위기가 과거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의료원 측이 창조컨설팅 자문을 받고 준비를 한 것 같은데 파업을 조속히 매듭지려는 뜻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창조컨설팅의 파업 개입 문제와 함께 ‘징계위원회’ 구성안 수정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의료원은 지난 19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 3차 조정 시 노조에 징계위원회 구성을 재조정하자고 제의했다. 현재 이화의료원의 징계위원회는 노사 동수로 구성돼 있고 위원회 의장에게는 결정권이 없다.

의료원 측은 “지난 1988년 정부조정에 의해 만들어진 징계위원회 구성을 재조정하는 한편 의장이 결정권을 행사토록 해야 한다”며 “의장에게 결정권이 없다보니 노조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이번 파업으로 의료원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국회의원들까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며 “노조는 이미지 손상 등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임 지부장은 “25년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에 대해 의료원이 문제를 삼은 것 자체가 파업 해결의 의지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며 “모든 책임을 노조에게 떠넘기려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임금, 꼴찌 아닌 중간은 된다”

파업해결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던 임금인상도 난망한 일이다. 노조 측은 8.7% 임금인상을 의료원 측에 제시했지만 의료원 측에서는 아직도 임금인상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의료원 관계자들도 임금인상안은 극비사안이라며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관련, 노조 측은 “의료원이 오는 2016년까지 강서구 마곡지구에 1200병상 규모의 대형병원을 개원하려하고 있다”며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는 것은 물론 목동병원 건립 때와 같이 직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화의료원은 부지매입 비용을 포함, 약 4000~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마곡지구에 새 병원을 건립할 예정이다. 예정대로 마곡지구에 신설병원이 건립되면 단일병원으로는 서울아산병원(2464병상)과 신촌세브란스병원(1873병상), 삼성서울병원(1721병상), 서울대병원(1539병상), 서울성모병원(1320병상)에 이어 여섯 번째로 큰 병원을 소유하게 된다.

의료원 측은 노조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의료원의 한 관계자는 “노조가 이화의료원 임금이 전국사립대병원 중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며 “동대문병원 통폐합 관련 임금보전 실시, 자녀학비 보조 등 전체적으로 보면 이화의료원 임금은 꼴찌가 아니라 중간정도의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임 지부장은 “의료원 측도 임금으로 따지면 전체 14개 대학병원 중 12위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며 “동대문병원 출신 직원 중에는 목동병원 신규직원보다 못한 임금을 받고 있는 사람도 있어 박탈감이 극에 달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의료원은 동대문병원과 목동병원 통폐합 당시 구조조정이 없었다고 자랑하지만 당시 150여 명의 간호사 중 100명이 이직했는데 이 자체가 또 하나의 구조조정인 셈”이라고 반박했다.

“직원들에게 가장 맛없는 식사를 제공하면서도 식재료비 500원을 인상하자는 노조의 요청을 묵살하는 의료원, 앵무새처럼 노조원들에게 ‘업무방해’를 외치는 중간관리자들…. 문제해결을 위해 이화여대에서 노숙농성을 전개했지만 협상자리에 나온 총장도 징계위원회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파업이 장기화될 것 같다.” 임 지부장의 체념어린 독백이다.

사립대병원 중 유일하게 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시민단체의 한 활동가는 “주인의식·상호존중·합리주의·최고지향 등을 핵심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이화의료원이 이번 파업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며 “대형병원 파업은 국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료원 측은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해 파업사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헬스경향 김치중 기자 bkmin@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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