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이 바꾼 역사 ‘항생제’, 많은 생명을 구하다
미생물이 바꾼 역사 ‘항생제’, 많은 생명을 구하다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10.14 0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헬스신간] 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
고관수 지음/계단/328쪽/1만8000원
고관수 지음/계단/328쪽/1만8000원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미생물인 세균을 직접 죽이는 방법이 없었다. 항생제란 미생물에 의해 만들어져 다른 미생물의 성장을 저해하거나 죽이는 물질이다. 이때 사람들은 ‘페니실린’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항생제의 종류는 엄청나다. 항생제는 인류에게 소중한 ‘선물’이다. 바로 사람에게는 없고 세균에만 있는 구조나 효소, 생합성과정을 표적으로 삼기 때문.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항생제의 역사의 시간을 되짚어보자.  

■역사로 알아보는 전염병과 항생제

항생제의 역사는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의 세균학자였던 알렉산더 플레밍은 염증을 유발하는 포도상구균을 연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플레밍은 실험실을 내버려둔 채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이후 플레밍이 발견한 것은 푸른곰팡이가 생겨난 배양접시. 이때 그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한다. 포도상구균이 푸른곰팡이 주위에는 자라지 못한 것이었다. 페니실린의 탄생 배경에는 이렇게 웃픈 일화가 숨어있는 셈이다.

페니실린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항생제는 ‘그라미시딘-S’다. 그라미시딘-S에서 ‘S’는 소비에트를 뜻한다. 즉 소련에서 개발한 항생제다. 그라미시딘-S는 1942년 소련의 미생물학자 게오르기 가우제와 마리아 브라츠니코바가 브레비바실러스 브레비스에서 발견했다.

이 약물은 그람양성균과 그람음성균 모두에 효과가 있다. 또 일부 곰팡이에도 효과를 나타냈다. 그라미시딘-S는 개발되자마자 소련군 병원에서 세균감염 치료에 사용돼 많은 사람을 살렸다. 1944년에는 소련의 보건부가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영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라미시딘-S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아주 적은 양을 쓰더라도 용혈현상이 발생한 것. 세균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적혈구도 파괴한다. 현재 그라미시딘-S는 주사제가 아닌 피부에 바르는 연고로만 사용되고 있다.

■21세기의 화두 ‘항생제 내성’

항생제의 개발로 인류는 더 이상 세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세균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본인의 살길을 개척하기 위해 스스로 진화하기 시작한 것.

다제내성균, 일명 ‘슈퍼버그’의 등장이다. 항생제에 저항력이 있는 슈퍼버그는 전 세계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다. 실제로 2019년 미국 질별통제센터(CDC)는 매년 280만여명의 미국인이 슈퍼버그로 고통받는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세계보건기구(WHO)는 2050년에는 세계인구 1000만여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 사용되는 항생제 대부분이 1950년에서 1970년대 사이에 개발됐다는 것이다. 그때 개발된 항생제를 변형한 것이다. 그러다 어느 시점 이후로부터는 새로운 계열의 항생제 개발이 뚝 끊겼다. 논문이나 보고서마다 지목하는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를 ‘혁신 실종기’ 또는 ‘발견 공백기’라고 부르고 있다. 이유는 많지만 개발하기 너무 어렵고 돈도 안 되기 때문.

인류의 역사는 세균과의 전쟁이었다. 잠시나마 승리를 맛봤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세균은 슬금슬금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항생제 개발과 역사를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미래를 대비할 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