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건강에 좋은 ‘자초’, 무분별한 복용은 화 자초한다
[한동하의 식의보감] 건강에 좋은 ‘자초’, 무분별한 복용은 화 자초한다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10.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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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의외인 약초가 있다. 바로 ‘자초(紫草)’이다. 자초는 줄기나 잎은 보통 풀인데 뿌리는 짙은 보라색을 띤다. 자초는 예로부터 연한 잎은 나물로 무쳐 먹고 뿌리는 차로 우려 마셨다. 간혹 시골에서는 보약이라고 해서 끓여 먹기도 한다. 오늘은 자초의 효능에 대해 알아보자.

자초(紫草, Lithospermum erythrorhizon S. et Z.)는 지치과에 속하는 다년생풀이다. 한자로는 지초(芝草), 지혈(芝血), 자근(紫根)이라는 별명이 있다. 우리말로는 지치라고 부른다. <본초강목>에는 ‘이 풀은 자색 꽃이 피며 뿌리도 자색으로 자주빛으로 염색할 수 있기 때문에 자초(紫草)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라고 했다. 자초의 뿌리는 옛날에 염료로도 사용됐고 진도 특산품인 홍주의 색을 내는 원료로도 사용되고 있다.

색은 오행배속에 따라서 관련 장부로 귀속된다. 자초는 자색이면서 붉은색을 띠기 때문에 오행으로 화(火)에 속하면서 심(心)과 혈(血)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자초는 색으로 보면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심혈관질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어혈을 제거한다고도 한다. 오행의 적색은 화로 열(熱)이지만 모순적이게도 자초는 붉은빛을 띠면서도 성질은 서늘하다.

자초는 맛이 쓰고 성질은 차고 독은 없다. <동의보감>에는 ‘성질이 차고 평(平)하면서 맛은 쓰며 달고 독이 없다’라고 했다. <본초학>에는 ‘청열(淸熱), 량혈(凉血), 해독(解毒)의 요약이 된다. 본 품은 청열해독(淸熱解毒)하고 소염(消炎)하는 약재다. 일체 급성염증과 화농성병증에 내복하거나 피부에 바르면 탁월한 효과가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자초의 효능은 모두 이 범주에 포함된다.

자초는 혈액을 맑고 시원하게 한다. <본초정화>에는 ‘심포락(心包絡)과 간경(肝經)의 혈분(血分)으로 들어가는데 그 작용은 양혈활혈(凉血活血)한다’라고 했다. 활혈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량혈은 혈액의 뜨거운 기운을 서늘하게 한다는 것이다. 자초는 기운이 서늘하기 때문에 혈열(血熱)한 증상에 사용한다. 쉽게 말하면 열증(熱症)과 열체질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몸이 차고 냉증이 심한 경우는 오히려 혈액순환을 방해한다.

자초는 피부염과 안면홍조증에 좋다. <본초강목>에는 ‘고(膏)를 만들면 어린아이의 창이나 얼굴의 비사증(鼻齄證)을 치료한다’고 했다. 비사증(鼻齄證)은 주사비로 주사피부염을 말한다. 일명 딸기코다. 과거에는 술을 많이 마셔서 생긴다고 해서 주사비(酒齄鼻)라고 했지만 술과는 무관하다. 자초는 아토피피부염, 주사피부염, 지루성피부염 등 다양한 염증성피부질환에 다용된다. 혈관의 투과성을 개선하는 효과도 뛰어나 모세혈관확장증에 의한 안면홍조에도 효과적이다.

자초는 종기를 치료한다. <본초강목>에는 ‘악창(惡瘡)이나 종기, 개선(疥癬, 옴)을 치료한다’ 또 ‘반진(斑疹)이나 두창(痘瘡)의 독을 치료한다’고 했다. 개선(疥癬)은 옴을 말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옴환자가 많았다. 옴은 옴진드기(Scabies mite)에 의해 발생, 전염성이 매우 강한 피부질환이다. 밤에 심해지는 가려움증이 특징이다. 없어진 줄 알았던 옴환자들이 최근 늘고 있다. 어쨌든 자초는 청열해독(淸熱解毒)함으로써 소염작용이 강해 피부궤양이나 종기에도 사용되는 것이다.

<본초정화>에는 ‘배가 붓고 그득해 아픈 것을 치료한다’고 했는데 자초는 위장, 소장, 대장 등 장점막의 급만성염증에 의한 창만증과 통증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초는 피부뿐 아니라 점막과 함께 일체 조직의 제반 염증에 적용된다.

자초는 과거 두진(痘疹)에 다용됐다. 두진은 천연두에 의한 발진이다. 요즘은 천연두환자가 없지만 이를 근거로 해서 자초는 피부발진과 함께 혈관염에 의한 자반증, 홍반증에 다용되고 있다. 필자는 자초를 혈관염에 의한 자반증환자에게 주로 처방하고 있다.

과거에는 어린아이의 백독(白禿)에 자초를 달여 낸 즙을 발라줬다. 백독은 두피에 나는 부스럼으로 전염성피부질환에 속한다. 보통 ‘땜빵머리’라고 부른다. 곰팡이균에 의한 두부백선에도 효과적이다. 두부백선은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기계를 통해서 감염된다고 해서 기계독(機械毒)이라고도 불렀다. 자초에는 항균·항진균효과가 있다.

자초는 연고의 재료로도 다용됐다. 대표적으로 <외과정종>에 기록된 ‘윤기고(潤肌膏)’다. 윤기고는 자초와 당귀를 참기름과 내소유(奶酥油, 젖을 응고해서 만든 것)에 추출, 밀랍을 이용해 고제로 만든 것이다. <의종금감>에는 ‘윤기고는 백설풍(白屑風, 인설성피부질환)에 바르는데 살과 피부가 건조하고 가려울 때 쓰면 더욱 영험하게 낫는다’라고 했다.

일본 에도시대에는 윤기고에 돈지(豚脂, 돼지기름)를 넣어서 자운고(紫雲膏)라고 이름 지었다. 자운고는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연고로 화상, 동상, 피부염, 벌레 물린 데, 피부건조, 튼살 등에 다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돈지 대신 식물성기름을 이용해서 만든다. 필자는 자운고를 자반증이나 다양한 피부염, 발뒤꿈치 갈라진 데에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초는 대소변을 원활하게 한다. <본초강목>에는 ‘대소장을 잘 통리시킨다. 소변을 잘 나오게 한다’라고 했다. 자초를 두진에 사용할 때 특히 열이 심하거나 대변이 나오지 않을 때 자초를 처방했다. 또 ‘소변이 방울져 찔끔거리는 증상에 자초 1돈을 가루 내고 식전에 정화수에 2돈을 타서 복용한다’고 했다. 자초는 대장의 막힌 기운을 뚫어주고 이뇨작용이 있으면서 여성의 방광염, 요도염 등에도 도움이 되고 남성의 전립선염, 전립선비대증에도 좋다.

자초에는 시코닌, 아세틸시코닌 같은 보라색 색소성분과 함께 다당류인 리소스퍼먼 등의 성분이 함유돼 있다. 이러한 성분은 혈액순환 촉진, 항염증, 항산화, 항진균작용, 구강세균억제, 항알레르기작용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연구·보고되고 있다. 구복이나 외용제, 식용색소로도 활용된다.

자초는 불임을 유발할 수 있다. 자초는 배란을 억제하고 배아발달을 막아서 불임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임신을 계획 중인 여성이나 임신 중인 여성은 자초를 복용하면 안 된다. 실제로 옛날에는 민간에서 임신을 막기 위해 자초와 녹두를 가루내서 먹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일부 연구에서는 남성의 정자운동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자초는 보약이 아니다. 간혹 일부 기록 때문에 자초만을 보약(補藥)인 양 끓여 먹기도 하지만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신농본초경>에는 자초가 ‘보중익기(補中益氣)한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자초는 보하는 효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속을 냉하게 해서 과량 복용 시 복통이나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본초정화>에는 ‘설사를 하는 경우에는 절대로 기(忌)한다’ 또 ‘소아의 비기(脾氣)가 허한 경우에는 도리어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라고 했다. 자초는 보중(補中)과는 거리가 멀다.

자초는 피부염과 혈관염을 치료하는 고마운 약초다. 물에 넣고 끓이거나 올리브유 등에 넣어두면 자색을 띠면서 붉게 물들어 특별하게 보인다. 하지만 특별하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다. 불임과 복통설사라는 의외의 부작용도 있다. 몸을 건강하게 한다고 해서 자초(紫草)의 무분별한 섭취로 새로운 병을 자초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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