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잠재력 높은 폐지방·폐치아…용두사미(龍頭蛇尾)는 이제 그만
[기자의 눈] 잠재력 높은 폐지방·폐치아…용두사미(龍頭蛇尾)는 이제 그만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11.0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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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국 기자
이원국 기자

‘신체발모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말이 있다.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 받은 것으로 이것을 손상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효경(孝經)’에 실린 공자의 오랜 가르침이다.

우리나라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단재생바이오법)’을 살펴보면 효경의 가르침을 참 잘 따르는 것 같아 뿌듯하기 그지없다.

본래 첨단재생바이오법은 살아 있는 세포를 배양하거나 편집해 만든 바이오의약품을 더욱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난치성질환의약품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시행령에 따르면 첨단재생의료는 세포치료, 유전자치료, 조직공학치료, 융·복합치료 등 4개로 분류된다.

첨단재생바이오법에 포함된 치료제들은 대부분 자가조직을 활용한다. 자가조직에는 여러 세포외기질이 포함돼 있는데 ‘폐지방’과 ‘폐치아’가 대표적이다. 

국제미용성형외과협회(ISAPS)에 따르면 지방흡입술이 유방확대술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형수술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비만환자는 2017년 1만4966명에서 2021년 3만170명으로 4년 만에 2배로 늘었다.

지방흡입술 시 폐지방은 반드시 발생한다.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연간 80톤의 폐지방이 발생한다. 폐지방은 첨단의약품, 기능성화장품 등에 활용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

폐지방은 ▲인공피부 ▲바이오프린팅 ▲바이오잉크 ▲오가노이드뿐 아니라 희귀질환치료제부터 창상피복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활용이 가능해 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폐지방에서 추출한 콜라겐 가격은 5㎎당 최대 84만원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법적으로 재활용이 불가하다. 병원이나 검사기관에서 배출된 인체조직은 ‘조직물류폐기물’로서 인체에 감염 등 위해를 줄 우려가 있는 ‘위해의료폐기물’로 분류, 원칙적으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것. 즉 연구목적 외에는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

폐치아 역시 마찬가지다. 폐치아는 연간 600만개가 발생, 골이식재료 재활용하면 약 600억원의 수입대체제가 될 수 있다. 자가치아뼈이식은 2019년 1월 자가 치아골이식재의 요양급여행위가 등재되며 점차 의료기관의 보편적 치료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 같은 해 7월 다른 사람의 치아재활용을 통한 뼈이식재 제조와 관련해 식약처 수출용 의료기기 인허가를 획득한 바 있다. 하지만 폐치아 재활용에 대한 법안이 개정되지 않아 동종치아 뼈이식재에 관한 해외 요청도 묵살되고 있다.

현재 인체유래 조직물 중 유일하게 의약품 등의 원료로 재활용이 가능한 것은 태반이다. 혈액제제의 보편화나 줄기세포 연구 등으로 태반 의약품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자 첨단재생바이오법을 통해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유독 폐지방과 폐치아에 관해서는 왜 이리 엄격한지 의문이다. 21대 국회에서만 폐기물관리법 4건의 발의됐으나 계류 중이다. 2020년 보건복지부는 폐지방 재활용 허용 및 ‘인체 파생연구자원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신산업 연구환경을 조성했지만 걸음은 아직 더디기만 하다.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이기에 남들에게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은 유교 국가로서 당연하다. 하지만 ‘K-바이오’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워 산업계에 부푼 꿈을 준 행위는 뭐라 해야 할까. 결국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렇게 시작해 놓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라는 마음을 걷어야 할 것이다. 지금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성공한 사업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처음에는 의도하지 않는 우연과 행운’이 겹쳐 성공을 거머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열정과 깨어있는 마음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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