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법률] 미성년 자녀에 대한 의료행위와 친권행사의 범위
[건강과 법률] 미성년 자녀에 대한 의료행위와 친권행사의 범위
  • 동방봉용 법무법인 문장 변호사ㅣ정리·유인선 기자 (ps9014@k-health.com)
  • 승인 2023.11.0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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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봉용 법무법인 문장 변호사
동방봉용 법무법인 문장 변호사

아이를 키우다 보면 크고 작은 질환으로 병원을 찾게 되는 일이 많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마음은 쓰리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의 심정을 모두 헤아리기는 어렵다. 그런데 아픈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부모인데도 신념에 따라 선택하는 의료행위는 다를 수 있다.

여기서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한 아이가 대동맥판막의 선천협착, 양방단실유입증, 심방심실중격결손증 등 진단을 받고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었다. 의료진은 우선 폐동맥밴딩술을 시행하고 선천성심장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심장교정술인 폰탄수술을 계획했다. 이러한 점을 부모에게 설명하고 수혈에 대한 동의를 받고자 했지만 부모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수혈에 동의하지 않고 무수혈방법의 수술을 원했다. 의료진은 아이에게 단계적 수술이 필요한데 무수혈방법으로 시행할 수도 있지만 아이의 체중, 혈액량, 증상 등에 비추어 무리라고 판단하고 재차 부모의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부모는 이를 거부했다.

의료인은 진료행위를 하는 경우 당시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해 환자가 그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해 보고 그 진료행위를 받을 것인지 여부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진료행위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환자동의는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의해 보호되는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환자가 생명과 신체기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고 진료행위를 선택하는 것이 원칙이다(대법원 2009. 5. 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여기서 법률상 쟁점은 아이의 자기결정권과 친권의 충돌문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환자인 아이는 미성년자이자 갓난아이다. 이 경우 친권자가 자녀를 대신해 진료행위에 대해 동의하는데 친권자 동의는 친권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하급심 판례는 “민법 제912조는 친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 자의 복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해 ‘자녀복리’가 친권행사의 기준이 됨을 명시하고 있다. 또 민법 제913조에 따르면 친권자는 자를 보호하고 교양할 권리의무가 있다고 정하고 있어 친권은 자녀를 양육, 보호 및 감호해 자녀의 복리를 실현하게 하기 위한 친권자의 권리이자 의무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친권자의 친권행사가 자녀의 생명·신체 유지, 발전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면 친권행사는 존중되면 아니 된다고 할 것이고 이는 민법에서 친권상실을 허용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명백하다”고 했다.

위 사례에서 법원은 “무수혈방법에 의할 경우 회복가망성이 거의 없어 아이생명에 중대하고도 심각한 침해결과가 발생할 가능성 크다. 반면 수혈을 수반으로 하는 수술을 할 경우 회복가능성이 훨씬 높은 점, 현재 임상의학 수준에서 이와 동일한 수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다른 대체 진료방법이 없는 점 등에서 아이의 복리에 부합하고 부모들의 신념에 따라 수혈을 거부하는 것은 친권자로 지정한 취지 및 친권행사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정당한 친권행사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기에 위와 같은 거부의사는 그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한편 아이의 현재 상태, 치료과정 및 회복가능성,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고려하면 아이가 수혈을 받는데 동의하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위 사안의 또 다른 쟁점은 헌법상 아이의 생명권이라는 기본권과 부모의 종교자유, 양심자유의 충돌문제다. 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생명권은 인간의 생존본능과 존재목적에 바탕을 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이고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 기능하는 기본권 질서의 가치적인 핵으로서 다른 기본권보다 우선돼야 할 것인 점, 수혈을 통한 이 사건 수술이 시행돼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고 긴급한 점 등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본다면, 채권자 병원은 신청외인에 대해 수혈을 시행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

위 사례에서 법원은 아이의 생명권을 우선하고 수혈동의를 거부하는 부모의 친권행사를 친권남용으로 보아 그 효력을 제한했다.

물론 부모의 신념도 지키고 아이의 생명도 살릴 수 있는 의학적 성과가 이루어진다면 위와 같은 사례는 해소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법률적 관점에서 보면 아이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점에서 헌법상 기본권의 해석과 그 충돌에 관한 법리를 전개한 하급심 판례는 많은 부모들에게 울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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