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여러 이름의 ‘지황(地黃)’…제법(製法)에 따라 효능도 달라져
[한동하의 식의보감] 여러 이름의 ‘지황(地黃)’…제법(製法)에 따라 효능도 달라져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11.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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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옛날에는 발목을 삐면 생지황 뿌리를 찧어 감싸곤 했다. 생지황은 피멍과 어혈을 제거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 생지황은 즙을 내서 마시기도 하는데 누군가는 복통과 설사를 호소하기도 한다. 지황은 제법(製法)의 종류에 따라서 효능도 달라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지황(地黃, Rehmannia glutinosa Liboschitz ex Steudel)은 현삼목 현삼과 지황속 식물인 지황의 뿌리를 말한다. 중국이 원산지다. 지황은 생것을 생지황(生地黃), 말린 것을 건지황(乾地黃), 생지황을 쪄서 말린 것을 숙지황(熟地黃)이라고 부른다.

지황은 하(芐)라는 이름도 있는데 하는 ‘호’로도 읽는다. 임상에서는 하자를 ‘변’으로 읽고 부른다. 또 숙하(熟芐)는 ‘숙호’라고도 읽어도 되지만 임상에서 ‘숙변’으로 읽고 부른다. 즉 처방에 숙변(熟芐)이라고 쓰여 있다면 바로 숙지황을 의미한다.

지황은 그 자체로 쌀과 함께 섞어 죽을 쑤어 먹기도 하고 즙을 내 누룩과 함께 섞어 술로 빚어 마시기도 했다. 무엇보다 생지황은 경옥고(璚玉膏)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약재다. 경옥고는 생지황, 인삼, 복령, 꿀로 이뤄진 처방으로 대표적인 자음(滋陰) 보약이다. 지황을 쪄서 말린 숙지황 또한 보약으로 많이 쓰인다.

생지황의 성질은 아주 차다. 생지황은 혈열(血熱)과 어혈(瘀血)을 푼다. <본초강목>에는 ‘환자가 허하면서 열이 많으면 생지황을 더해 써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동의보감>에는 ‘모든 열을 풀고 굳은 피와 어혈을 깨뜨리며 월경을 통하게 한다’고 했다.

생지황은 지혈작용이 있다. <동의보감>에는 ‘부인이 붕루(자궁출혈)로 피가 멎지 않는 것, 태동으로 하혈하는 것, 코피와 토혈에 주로 쓴다’라고 했다. <본초강목>에는 ‘코피나 토혈 등에는 모두 찧어 낸 즙을 마신다’고 했다. 생지황은 혈의 기운을 서늘하게 해서 지혈시킨다. 따라서 체질적으로 열이 많은 환자에게 적용된다. 냉체질은 절대 금해야 한다.

생지황은 발목 삔 데에 좋다. <본초강목>에는 ‘넘어져 다리를 삔 증상을 치료하고 어혈을 푼다’고 했다. 옛날에는 발목을 삐면 생지황즙을 밀가루와 반죽을 해서 삔 데에 붙여줬다. 그렇게 하면 피멍과 부종을 줄이고 통증도 억제해서 회복을 촉진시켰다. 생지황은 혈액순환을 촉진해서 소염·진통작용이 있다.

생지황이 체질과 증상에 맞지 않으면 설사를 유발한다. <본초강목>에는 ‘생지황의 성질은 매우 차서 위(胃)가 약한 자는 참작해 써야 한다. 위기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술에 법제하면 위(胃)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황류는 모두 소양인 약재다. 소음인이 복용하면 반드시 배탈, 설사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지황은 파, 마늘, 무와 함께 먹지 말라고 했다. 사람의 영위(榮衛)가 껄끄러워져 수염과 머리털이 희게 된다고 했다. 이 내용은 특히 숙지황에 해당한다. 한약을 먹으면서 무를 먹으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는 말이 이런 내용에서 연유했다. 그렇다고 해서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음은 지황을 말린 건지황이다. 건지황은 성질이 차지만 독은 없다. 생지황의 기운이 아주 찬 것에 비하면 약간 누그러진 것이다.

건지황은 생지황과 주로 마찬가지로 조증(燥症)과 열증(熱症)에 사용된다. <본초강목>에는 ‘신수(腎水)와 진음(眞陰)을 보해 주며 피부가 마른 것을 제거하고 여러 가지 습열을 제거한다. 또 심병(心病)으로 손바닥이 뜨겁고 아픈 증상과 발바닥에서 열이 나고 아픈 증상을 주치한다’고 했다. 가슴과 손바닥 두 군데, 발바닥 두 군데를 오심(五心)이라고 하는데 건지황은 오심번열(五心煩熱)에 좋다. 전형적인 소양인 병증이다.

만일 생지황을 쓰고 싶은데 열이 심하지 않고 설사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건지황으로 바꾸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건지황은 생지황과 숙지황의 중간 정도의 약성과 효능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숙지황은 생지황을 쪄서 말린 것이다. 보통 구증구포로 해서 만들어진 숙지황이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다. 숙지황의 맛은 달고 약간 쓰며 성질은 약간 따뜻하고 독이 없다. 건지황이 약간 보하는 작용이 생겼다면 숙지황은 보하는 작용이 강해진다. <향약집성방>에는 ‘허(虛)한 사람이 보약으로 쓸 때는 반드시 숙지황(熟地黃)을 써야 한다’고 했다.

생지황과 숙지황은 사용하는 병증이 서로 다르다. <본초강목>에는 ‘생지황은 혈열(血熱)이 있는 자에게 써야 하고 숙지황은 신(腎)을 보해 주니 혈이 부족한 자에게 써야 한다. 생지황은 맥이 홍(洪)하고 실(實)할 때 써야 하고 맥이 허하다면 숙지황을 써야 한다’고 했다. <본초정화>에는 ‘남자는 음허(陰虛)가 많기 때문에 숙지황을 사용하는 것이 좋고 여자는 혈열(血熱)이 많은 탓에 생지황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숙지황은 무엇보다 보약으로 쓰인다. <동의보감>에는 ‘혈(血)이 쇠약한 것을 크게 보하고 ▲수염과 머리카락을 검게 하며 ▲골수를 채우고 살지게 하며 ▲근골을 튼튼하게 하고 허손을 보하며 ▲혈맥을 잘 통하게 하고 기력을 더하며 ▲눈과 귀를 밝게 한다’고 했다. 따라서 신수(腎水)를 보하는 육미지황환이나 콩팥의 양기를 보하는 팔미환에 가장 대표적인 군약으로 쓰이고 있다. 숙지황은 콩팥을 보하면서 항노화작용이 뛰어나다.

숙지황도 생지황 못지않게 소화불량이나 설사와 같은 부작용이 있다. <본초강목>에는 ‘숙지황은 혈(血)을 보해 주지만 담음(痰飮)이 많은 사람이 복용하면 흉격을 막는다’고 했다. 따라서 <급유방>에서는 ‘숙지황을 축사인 가루에 버무려 생강즙에 담갔다가 쓰면 흉격을 끈적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숙지황을 만들 때 사인을 넣은 술에 버무리고 찌는 이유는 소화가 잘되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숙지황이라 할지라도 소음인은 설사를 한다. 예를 들면 숙지황이 포함된 쌍화탕을 복용하고 설사를 했다면 소음인일 가능성이 높다.

지황의 성분은 이리도이드배당체가 주류를 이룬다. 그 중 카타폴이 주된 활성성분으로 혈압하강 작용이 있고 이뇨작용, 콩팥기능 개선작용을 나타낸다. 또 카타폴은 항염증, 항산화 및 심혈관 보호, 기억력과 관련된 신경세포 보호효과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타폴은 생지황과 건지황에는 많지만 열을 가하면 감소한다. 대신 숙지황의 성분으로는 당류가 주성분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이 분해해 생성된 5-HMF 성분과 이리도이드, 페닐에타노이드 배당체 등의 화합물들이 보고된다. 이러한 성분이 숙지황의 보하는 효능을 강화시킨다.

지황은 단지 식물의 뿌리지만 약성이 강하다. 필자는 지황을 사용하면서 환자들의 소화불량과 배탈 등을 많이 경험해서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하지만 지황이 체질에 맞는 경우에는 그 어떤 처방보다 뛰어난 효과를 낸다. 똑같은 약초라도 누구에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그 효용성이 달라지는 법이다. 또 그 약초의 제법(製法)을 어떻게 변화시켜서 사용하느냐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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