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공포의 대명사 ‘지네’…질병 이기는 효능 있다고?
[한동하의 식의보감] 공포의 대명사 ‘지네’…질병 이기는 효능 있다고?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12.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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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간혹 지네가 관절염에 좋다는 민간요법을 듣고 찾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닭을 삶아 먹을 때 지네를 넣어서 삶아 먹기도 한다. 실제로 지네요법은 근거나 효과가 있는 것일까. 이번 칼럼에서는 ‘지네’의 효능과 부작용에 대해 알아보자.

약용 지네는 보통 ‘왕지네’를 말한다. 왕지네(Scolopendra subspinipes mutilans)는 절지동물문 왕지네목 왕지네과 왕지네속 베트남왕지네종 왕지네아종에 속한 절지동물이다. 크기와 색은 여러 종류가 있다. <명의별록>에는 ‘머리와 다리가 붉은 것이 좋다’라고 했다. 왕지네는 길이가 10~20cm이고 머리와 다리의 색이 붉은 것을 약용한다.

한약재명으로는 오공(蜈蚣)이라고 한다. 지네의 맛은 맵고 성질은 따뜻하다. 하지만 지네의 앞다리 갈고리에는 독샘이 있다. 지네에 물리는 것은 입이 아니라 사실 앞다리 갈고리에 찔린 것이다. 약으로 사용할 때는 불에 구워 머리와 다리를 모두 제거하고 사용한다.

우선 지네는 경련을 억제한다. <본초강목>에는 ‘어린아이의 경간(驚癎)과 풍(風)으로 인한 경련, 제풍(臍風)으로 이를 악물고 있는 증상을 치료한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파상풍으로 입을 열지 못하고 몸이 차갑게 굳어지는 경우를 치료한다. 오공을 곱게 간 가루로 이를 닦아주면 거품을 뱉어내면서 살아난다’고 했다. 실제로 지네는 파상풍에 의한 경련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

<본초강목>에는 ‘지네는 대체로 궐음경에 쓰는 약이다’고 했다. 궐음경에 관련된 병은 간병(肝病)으로 근육경련, 근육긴장, 떨림 등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왕지네는 경축 및 경련성질환에 사용된다. 진통작용도 있어 임상에서는 삼차신경통이나 안면근육 떨림 등의 증상에 활용해볼 수 있다.

지네는 항진균작용이 있다. <본초강목>에는 ‘어린아이의 독창(禿瘡)에 큰 지네 1마리와 소금 1푼을 기름 속에 7일 동안 담가둔다. 이 기름을 갖고 환부에 발라 주면 매우 효과가 좋다’고 했다. 독창(禿瘡)은 두부 백선으로 두피에 피부사상균이 감염을 일으켜 발생하는 표재성곰팡이균 감염성질환이다. 지네는 두피가 아니더라도 일반 피부의 진균증 외용제로 활용이 가능하다.

지네는 치질에도 좋다. <본초강목>에는 ‘치창(痔瘡, 치질)으로 욱신거리고 아픈 증상에 지네 3~4마리를 참기름을 달여 한두 차례 끓어오르면 담그고 다시 오배자 가루 2~3돈을 넣은 다음 병에 담아 밀봉한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발생할 때 이 기름을 환부에 떨어뜨려 주면 즉시 통증이 멎는 매우 뛰어난 효과가 있다’라고 했다. 지네에는 소염진통작용이 있다.

지네로 고약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수진경험신방>에는 오공고(蜈蚣膏)라고 나온다. ‘일체의 이미 터진 이름 없는 악독(惡毒)을 치료한다. 붙인 후 며칠 만에 바로 독을 제거하고 살을 돋게 해 기사회생시키는 공이 있다’고 했다. 오공고에는 지네와 목별자가 들어간다. 목별자는 베트남 원산지 과일인 걱(gac)의 열매로 습창을 치료하는 효과가 좋아 한약재로 사용된다.

<의종금감>에는 정강이뼈 부위의 궤양인 렴창(臁瘡)을 치료하는 오공전(蜈蚣餞)이 나온다. ‘오동기름에 지네, 감초, 독활, 백지를 넣고 다려서 따뜻하게 해서 상처를 반복적으로 씻어주면 풍독(風毒)이 흩어지고 섞은 살이 점차 빠진다’고 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지네는 피부가 헐어 창이 생긴 곳에 외용제로 사용했을 때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최근 농촌진흥청에서는 왕지네에서 항생물질인 스콜로펜드라신(scolopendrasin)을 분획해 아토피성피부염 같은 피부염에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지네는 소염작용과 함께 상처회복을 촉진하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네는 항종양작용이 있다. <본초강목>에는 ‘징벽(癥癖)을 치료한다’고 했다. 징벽은 징가(癥瘕)와 현벽(痃癖)으로 뱃속에 생긴 종양이나 장근육이 덩어리처럼 뭉친 것을 뜻한다. 부인의 자궁근종도 징가의 일종이다. 최근 연구결과 왕지네추출물이 실험적 연구에서 다양한 암세포의 세포자연사(apoptosis)를 유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왕지네에는 봉독과 유사한 펩타이드 결합의 독성성분이 있다. 주된 물질은 히스타민 유사물질과 용혈성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다. 이밖에도 티로신, 류신, 개미산, 지방유, 콜레스테린 등을 함유하고 있다. 항균작용으로는 결핵균을 억제하는 작용도 한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왕지네추출물은 항산화작용, 중추성억제작용, 해열진통작용, 진정작용 및 혈압강하작용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또 경축 및 경련성질환에 효과가 있음이 규명됐다. 더불어 실험쥐의 경혈에 오공수침(지네약침)을 놓았을 때 진통작용과 경련억제 작용이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최근에는 관상동맥 심장질환과 류마티스성 심장질환의 위험을 줄인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민간에서는 허리나 관절이 아플 때 왕지네를 볶아 가루로 만들어 먹는다. 지네가 관절이 많아 관절에 좋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비롯됐다. 이와 관련된 문헌적 근거는 찾아볼 수 없지만 최근 다양한 실험적 연구결과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또 닭이 지네를 잘 잡아먹어서 천적관계로 닭이 지네독을 해독한다고 믿었다. 역시 <의가비결>에는 ‘지네에 물리면 생닭고기를 붙인다’라고 했다. <경악전서>에는 ‘어느 하녀가 잘못해서 지네를 삼키게 됐는데 먼저 닭의 피를 마시고 나서 참기름을 먹어 토하게 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무작정 닭에 지네를 넣고 삶아 먹었던 것은 아니다. <증보단방신편>에는 담종(痰腫)에 ‘닭 한 마리(내장과 막을 제거한 것), 지네(머리와 다리를 떼지 않고 말린 것) 1마리를 솜에 싸서 닭의 뱃속에 넣고 문드러지게 삶은 후 지네를 건져내어 버리고 먹으면 신묘한 효험이 있다. 병이 위중한 경우에는 2~3차례 먹는다. 온갖 담증(痰症)에 좋은 약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담종(痰腫)은 피부나 근육에 결절이 잡히는 종창(腫脹)를 말하고 담증(痰症)은 가래를 포함해서 근육통도 의미하는 병증이다.

지네를 먹을 때 밤을 먹으면 효과가 없어진다고 했다. 옛날에는 지네를 너무 많이 잡아먹은 닭을 먹고 지네독으로 식중독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의휘>에는 ‘지네가 독을 남긴 닭고기의 독에 중독되면 답답하고 어지럽다가 입을 벌리고 정신을 잃으며 혀가 붓고 피가 나는데 생밤을 씹어 즙을 내어 입속에 부어준다. 이외에 다른 약은 없다’고 했다. 이러한 기록 때문에 지네를 먹으면서 밤을 먹으면 효과가 없다는 말이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

지네는 히스타민 유사물질이 있어 피부 두드러기 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또 임산부는 복용하면 안 된다. <동의보감>에는 ‘징벽(癥癖)을 치료하고 낙태시키며 악혈(惡血)을 없앤다’고 했다. 지네는 뭉친 기운을 풀어헤치면서 어혈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는데 임신 초기에는 낙태의 위험이 있다.

지네는 생긴 것이 징그럽지만 역사적으로도 강력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신성한 존재를 의미했다. 생김새가 특별하다면 그 자체로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별한 효능이 있을 법하다. 향후 지네를 활용한 다양한 의약품의 개발소식을 기대해 볼 만하다. 지네는 건강에는 지지만 질병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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