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법률] 전원권고 따랐는데 이동 중 심정지 발생…과연 의사의 책임일까
[건강과 법률] 전원권고 따랐는데 이동 중 심정지 발생…과연 의사의 책임일까
  • 권은택 법무법인 문장 변호사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4.01.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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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택 법무법인 문장 변호사

감기몸살 증상이 있던 환자가 동네병원을 방문했다가 의료진의 전원권고에 따라 병원을 나온 직후 쓰러지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결국 사망했다면 의료진은 위자료 배상 책임을 부담할까.

이에 관해 1, 2심 법원은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최근 대법원은 의사에게 위자료 배상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고 판단해 원심을 파기환송했다(대법원 2023. 8. 18. 선고 2022다306185 판결).

A씨는 2018년 2월 감기몸살 증상이 있어 동네의 한 내과 의원에서 수액을 투여받던 중 호흡곤란을 일으켜 수액 투여가 중단됐다. 의사인 B씨는 A씨의 호흡곤란 원인을 천식으로 파악하고 약물을 추가 투여했지만 A가 계속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하자 “택시를 타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전원을 권고했다.

A씨는 B씨의 전원권고에 따라 내과를 나온 후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건물 앞에서 주저앉아 쓰러졌고 119 구급차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되던 중 심정지가 발생해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받다 2019년 12월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A씨의 유족들은 B씨의 의료과실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B씨의 치료행위로 인해 망인에게 심정지가 발생했음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A씨가 사망한 결과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1, 2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엇갈린 부분은 바로 A씨에게 호흡곤란이 발생한 이후부터 이송되기까지의 과정이다.

1, 2심은 B씨가 A씨에게 호흡곤란이 발생했을 때 A씨의 혈압, 맥박, 호흡수 등을 측정하지 않았고 A씨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지 않았으며 택시를 불러 A씨가 즉시 탑승할 수 있게 하거나 구급차를 호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송과정에 관여하지 않은 행위는 일반인의 처지에서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된다는 등의 근거를 들어 B씨가 A씨 및 유족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수인한도를 넘는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로 인한 위자료는 환자에게 발생한 신체상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와 관련된 정신적 고통을 위자하는 것이 아니라 불성실한 진료 그 자체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고통을 위자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불성실한 진료로 인해 이미 발생한 정신적 고통이 중대해 진료 후 신체상 손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별도의 위자료를 인정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마땅한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라는 전제로 A씨가 B씨 의원에 내원했다가 주사를 투여받은 후 전원권고를 받고 부축받아 걸어 나왔다면 A씨의 혈압 등을 측정하지 않았다거나 이송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행위만으로 B씨가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했다고 보기 어려워 B씨에게 위자료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의료소송은 의료진의 과실 유무, 의료행위와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 인정 여부 등에 관해 전문가들은 물론 심급마다 판단이 엇갈리고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본 사건에서도 ‘수인한도를 넘는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에 해당하려면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하는지에 관한 판단이 엇갈렸다.

사실 의사의 과실 유무를 쉽사리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의료분야는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만큼 의사는 전문가로서 환자에게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끝났다고 마음을 놓을 것이 아니라 법적인 책임보다 좀 더 나아가서 환자를 보호하는 자세를 취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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