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복(伏)날, 제철음식이야말로 진짜 보양식
마지막 복(伏)날, 제철음식이야말로 진짜 보양식
  • 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 승인 2015.08.12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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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우리나라처럼 보양식에 열광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보양식을 먹겠다고 광고하고 다녀도 거리낌 없는 기간도 있다. 바로 삼복이다. 오늘은 삼복의 마지막 날인 말복이다.

복날에는 개를 먹기 때문에 개 견(犬)자가 있는 복(伏)자를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견(犬)은 먹는 개가 아니다. ‘농가월령가’에는 ‘황구(黃狗)의 고기가 사람을 보한다’ 했고 ‘동의보감’에는 ‘모구육(牡狗肉; 수컷 개고기)은 성질이 따뜻하고 오장을 편안하게 한다’고 했다. 황웅견(黃雄犬)과 찐밥, 누룩을 섞어 만든 술을 무술주(戊戌酒)라고 했다. 견(犬)과 구(狗), 술(戌)을 혼재해 사용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보통 식용개는 ‘구(狗)’라고 했다.

 

복(伏)은 엎드린다는 의미로 ‘잠복돼 있다’는 말이다. 한의서에 복서(伏暑) 또는 복기(伏氣)라는 말이 있다. 복서는 더위로 인한 후유증을 의미하고 복기는 즉시 병을 일으키지 않고 체내에 일정기간 머물다가 병을 일으키는 사기(邪氣 ; 나쁜 기운)를 말한다. 복(伏)자는 숨어있는 삿된 기운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의미다. 아마도 숨은 사기는 양기(陽氣)에 억눌린 음기(陰氣)일 것이다.

따라서 복날에 음식을 챙겨 먹는 것은 복날을 잘 이겨내자는 질병예방의 의미가 강하다. 중국 ‘형초세시기’를 보면 ‘복날에는 탕과 떡을 먹는데 이는 악귀를 물리치기 위함이다(伏日食湯餅,名爲辟惡)’라고 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도 복날에 팥죽을 먹어 더위를 물리치고 면역력을 키웠다. 당시 민속신앙에서는 팥의 붉은 기운이 질병을 일으키는 귀신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복날에 삼계탕이나 개고기를 먹은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인삼재배가 조선 중종 때이니 삼계탕은 흔한 음식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름도 원래는 계삼탕(鷄蔘湯)이었다. 개를 먹은 역사는 길지만 삼복에 개를 먹는 풍습이 동국세시기에 처음 등장한 것을 보면 고려 말까지는 흔한 풍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초복을 두복(頭伏), 중복을 이복(二伏), 말복을 삼복(三伏)이라고 했다. 두복에는 교자(餃子 ; 만두)를 먹고 이복에는 면(麵 ; 국수)을 먹고 삼복에는 달걀지지미전(餅攤雞蛋)을 먹었다고 한다.

주위를 보면 독특한 보양식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동물수컷의 생식기나 쓸개즙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고 꼬리만 즐겨 먹는 사람들도 있다. 보신탕(補身湯)을 보신탕(補腎湯)이라고 바꿔 쓰고 있으니 모두 잘못된 믿음에서 생긴 보양식문화다.

중국 ‘예기’에 보면 팔진(八珍)이라는 보양식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후두갱(猴頭羹 ; 원숭이머리국)이다. 갱(羹)은 국을 의미하는데 옛날에는 탕(湯)과 비슷하게 사용된 글자다. 특이한 보양식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원숭이머리를 탕으로 먹었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후두(猴頭)는 버섯의 한 종류인 후두고(猴頭菇 ; 원숭이머리버섯)를 의미한다. 노루궁뎅이버섯처럼 말이다.

‘한비자’의 유로편에 보면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젓가락과 옥그릇) 이야기가 나온다. 주지육림으로 유명한 은나라 주왕이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게 하자 숙부인 기자가 상아젓가락이면 코끼리고기나 표범의 태반 정도는 먹어야 할 것이니 마지막이 두렵다는 식으로 걱정한다.

말복이라고 해서 독특한 보양식을 찾을 필요는 없다. 주위에 흔히 있는 제철음식이야말로 진짜 보양식이다. 흔한 식재료일수록 언제든지 쉽게 활용할 수 있어 좋다. 도대체 무엇까지 먹어봐야 보양식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을까. 우리 손에도 상아젓가락이 들려 있는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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