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발효액, 숙성 전에는 사약(死藥)이다
은행발효액, 숙성 전에는 사약(死藥)이다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 승인 2015.10.0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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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는 무엇이든 발효를 시키면 몸에 좋을 것이라는 위험한 믿음이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방송을 통해 은행발효액이 마치 비방처럼 소개되면서 은행까지 발효시켜 섭취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은행에는 아주 다양한 독성물질이 있어 은행발효액이 자칫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필자에게 얼마 전 한통의 전화가 왔다. 자신의 남편이 은행발효액을 구해 먹었는데 섭취 도중 전신마비증상이 생겨서 입원치료 중이라는 것이다. 혹시 해독법이 있느냐는 문의다. 다행스럽게 잘 치료됐지만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례다. 아마도 이러한 크고 작은 부작용을 경험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을 것이다.

방송이나 인터넷상에 공개된 은행발효방법을 보면 악취가 나는 외종피(외피)까지 통째로 넣어 자연숙성시킨다. 은행 자체에도 어느 정도 당분이 있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발효가 진행되지만 자연숙성 후 2차로 설탕을 넣기도 하고 처음부터 막걸리에 넣어 발효시키기도 하다. 그런데 내용들을 보면 백인백색(百人百色)으로 “이렇게 만들어 보니 좋더라”는 식이다.

은행에는 아주 다양한 독성물질이 포함돼 있다. 냄새가 나는 외종피에는 빌로볼(bilobol)과 징코톡신(ginkgotoxin; 은행독소), 징콜릭산(ginkgolic acid; 은행산)이 있다. 이들 물질은 피부에 수포를 일으키고 알레르기성 접촉성피부염을 유발한다.

특히 은행알맹이를 감싸고 있는 얇은 피막에는 징코톡신이 많다. 다량섭취하면 간질발작을 일으킨다. 은행알맹이에는 징코톡신뿐 아니라 아미그달린(amygdalin)이 포함돼 있다. 아미그달린은 시안배당체로 복통, 구토, 설사에서부터 마비증상을 일으키며 중추신경계 이상과 함께 심지어는 사망에 이르게 한다.

중요한 문제는 은행의 독성물질이 발효가 진행되는 동안 발효액에 용출된다는 점이다. 대부분 수용성이기 때문에 수분이 늘어날수록 잘 빠져나온다. 게다가 발효방법과 숙성기간에 따라 빠져나오는 독성물질의 농도는 관련연구가 없어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숙성이 진행되면서 독성물질의 농도는 어느 시점까지 점차 높아지다가 다시 분해가 시작될 것이다. 따라서 독성물질의 농도가 최고점인 시점에서는 독약과 같다.

은행발효액의 악취는 1년 정도 지나면 사라진다. 아마도 특유의 향인 빌로볼이 상당히 분해됐기 때문일 것이다. 시안배당체(아미그달린)도 숙성기간이 1년 정도면 낮은 농도로 떨어진다. 징코톡신도 농도가 높아졌다가 발효가 진행되는 동안 점차 감소할 것이다. 시안배당체는 열에 약해 가열하면 쉽게 분해되지만 징코톡신은 열에 강해 파괴되지 않는다. 따라서 발효액을 끓여도 독성은 남아있다. 은행도 얇은 껍질은 반드시 벗기고 구워먹어야 한다.

 

은행을 발효시켜 먹는 사람들은 발효되면 독성이 모두 없어진다고 말한다. 인터넷을 보면 최소 1년, 혹은 3년이다, 5년이다 등 말들이 많다. 하지만 관련연구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은행외종피나 은행잎을 발효시켜 천연살충제로 활용하고 있다. 발효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겠지만 살충제용 은행발효액에 살충효과나 항균효과가 있다는 것은 독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은행발효액을 섭취하고자 한다면 최소 3년 이상의 숙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설령 숙성기간을 충분히 거쳤도 단기간만 조금씩 섭취하면서 관찰한다. 또 은행 독성물질에 민감도가 높은 경우 숙성기간과 상관없이 섭취하면 안 된다. 특히 어린아이, 임산부, 노약자나 면역질환을 알고 있는 사람은 더욱 주의해야한다. 독성이 제거되지 않은 경우 한꺼번에 다량섭취하거나 설령 적은 양이라도 장기간 섭취하면 중독될 수 있다. 은행발효액은 제대로 숙성되지 않는 경우 사약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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