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은 호구? 언급만 하면 다 효능 끝내주나
동의보감은 호구? 언급만 하면 다 효능 끝내주나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 승인 2015.11.05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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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늙은 호박요리가 인기가 많다. 호박찜, 호박구이, 호박숙, 호박떡, 호박죽 등 종류도 많다. 그렇다면 호박에는 어떤 효능이 있을까. 대부분의 인터넷 내용들은 동의보감을 언급하면서 호박의 효능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호박은 성질이 평순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켜며 산후의 하복부 통증을 치료한다. 또 소변을 나가게 하고, 눈을 밝아지게 하고, 눈병을 치료한다’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 호박은 먹는 호박의 효능이 아니다. 바로 호박(琥珀) 보석이다. 한글 발음이 동일하다 보니 오해한 결과인 것 같다. 여러 가지 인터넷 백과사전도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호박 보석은 과거 고급한복의 단추로 쓰였던 것으로 일종의 송진이 뭉쳐져서 만들어진 송진화석이다. 과거에 약으로도 사용됐다. 호박(琥珀) 편을 자세하게 읽어보면 ‘호박은 가루내서 체로 잘 쳐서 사용하고 소나무에서 구할 수 있다’라고 돼 있어 먹는 호박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상의 내용들은 전형적인 레퍼런스 오류다. 누군가 잘 못 인용해 놓은 것을 사실이겠지 하면서 의심없이 재인용하는 오류를 말한다.

 

안타깝게도 동의보감에는 먹는 호박은 수록돼 있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동의보감은 조선 중기에 완성(1613년)됐는데 호박은 조선 후기 임진왜란 이후에 전래됐기 때문이다. 한국에 들어온 호박은 중국을 통해서 동양계 호박(늙은 호박)이 들어왔고 일본을 통해서 서양계 호박(단호박)이 전래됐다는 설이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중국 명나라 때 저술된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는 호박이 남과(南瓜)라는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 ‘속을 보하고 기운을 더해준다’라고 했다. 남과는 남쪽[남(南)]에서 유래된 박[과(瓜)]이라는 의미다.

동의보감은 시대적으로 먼저 출간된 본초강목을 참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호박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떤 작물인줄 몰랐거나, 중국에서 나는 작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선의 백성들이 구할 수 없는 재료였기 때문에 누락시켰을 수도 있다. 호박이 전래된 이후 조선 후기에 국내에서 저술된 방약합편에는 남과(南瓜)로 기록됐다.

동의보감이 저술된 이후에 전래된 채소로는 호박 이외에도 감자, 고구마, 고추, 양파, 옥수수등이 있다. 당연히 이 재료들의 관련내용도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인터넷에 보면 해당 재료들 또한 동의보감을 언급하면 효능을 설명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동의보감에는 감자가 충치를 예방하고, 해충이나 기생충을 없애는 구충작용과 술독을 푸는 해독 작용을 한다고 되어 있다’는 식이다. 그럴싸하지만 동의보감에는 찾아 볼 수 없는 내용이다.

감자는 한자어로 감저(甘藷), 마령서(馬鈴薯)나 양우(洋芋), 고구마는 번서(蕃薯), 고추는 날초(辣草), 양파는 옥총(玉葱), 옥수수는 옥촉서(玉蜀黍)로 불리웠다. 역시 동의보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자어 이름이다. 동의보감 이전의 중국 서적이나 조선후기 국내서적에 등장하는 한자어 이름이다.

옛 말에 “주자 업고 송사(訟事)한다”는 말이 있다. 주자(朱子)는 송대의 성리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사서삼경에 모두에 주석을 달았던 주희(朱熹)를 말한다. 주자는 당대 최고의 석학으로 일반인들이 말싸움을 할 때 주자를 들먹이면 지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주자의 의견이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동의보감 또한 그 명성 때문에 주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동의보감의 역사적, 학술적, 임상적 가치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잘못된 내용이나 오류는 냉정하게 지적되고 배제돼야 한다. 심지어 없는 내용조차 동의보감을 등에 업고 송사할 필요까지 없는 노릇이다. 허준 선생님이 아시면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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