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 차고 뜨거운 기운은 섭취온도와 별개
식품의 차고 뜨거운 기운은 섭취온도와 별개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 승인 2015.11.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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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날씨가 쌀쌀해지는 계절에는 기운이 따뜻한 것들을 챙겨 먹어야 한다고 한다. 약초는 물론 특정식품에 차갑거나 뜨거운 기운이 있다는 것이 이유다. 그렇다면 그 기운의 실체는 무엇일까. 먹을 때의 온도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한의학에서는 모든 식품에는 한열온량(寒熱溫涼)의 4가지 기운이 있다고 말한다. 한열온량은 차갑고(寒) 뜨거우며(熱) 따뜻하고(溫) 서늘한(凉) 기운을 의미한다.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을 때 평(平)하다고 한다. 이러한 고유의 기운은 아무렇게나 결정된 것이 아니라 그 식품을 먹은 후 나타나는 신체변화를 통해 구분되는 것이다.

특정식품 복용 후 체온상승, 각성과 흥분, 발한, 신진대사촉진, 면역증강 등의 효능을 경험했다면 그 기운을 ‘뜨겁거나 따뜻한’ 기운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반면 소염진통, 진정, 해열, 신진대사억제 등의 효과가 나타났면 ‘차갑거나 서늘한’ 기운을 가진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계피를 먹으면 몸이 훈훈해지기 때문에 온성으로 분류되고 오이를 먹으면 차분해지기 때문에 냉성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효능은 식품에 포함된 지표물질이나 생리활성물질 등에 의해 나타난다. 따라서 특정성분이 식품의 기운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사포닌은 혈액순환을 돕고 카페인은 강심작용으로 심장을 흥분시키기 때문에 사포닌이나 카페인 함유식품은 기운이 따뜻하거나 뜨겁다고 할 수 있다. 매운 맛을 내는 생강의 쇼가올이나 진저롤, 고추의 캡사이신도 성질을 뜨겁다고 결정짓는 성분이다.

반대로 녹두껍질에는 비텍신과 이소비텍신이라는 성분이 있어 진정작용을 나타내고 감자나 우엉에 많은 이눌린은 진정작용와 노폐물제거작용이 있어 이들 식품은 기운이 서늘하거나 차갑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기운이 서늘한 식품을 끓이거나 구워 먹는다면 그 기운은 어떻게 될까. 일시적으로는 따뜻해지지만 원재료가 가진 고유의 기운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기운이 냉한 수박을 끓여 따뜻하게 먹는다 해도 순간적으로는 몸을 덥히겠지만 결과적으로 서늘하게 만든다. 아주 뜨거운 기운의 독한 양주를 얼음물에 희석하면 보다 편하게 마실 수 있지만 결국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약초의 기운을 변화시키는 작업을 수치(修治)라고 한다. 하지만 찬 기운을 약간 서늘하게 바꾸거나 따뜻한 기운을 열성으로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만 한랭(寒冷)한 기운 자체를 온열(溫熱)한 기운으로 바꿀 수는 없다. 실례로 찬 기운의 약재를 ‘끓인 탕약’으로 처방했어도 기본적으로 서늘한 기운이기 때문에 열성질환치료효과를 유지한다.

 

예컨대 수증기, 끓여서 약간 식힌 물, 얼음물, 상온의 물은 마실 때 온도차이는 나타내지만 결국 식으면 물이라는 평(平)한 물성(物性)을 되찾게 된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끓인 물과 냉수를 반반씩 섞은 생숙탕(生熟湯)도 그럴싸할 뿐 ‘미지근한 물’ 이외에 별다른 의미를 두기 어렵다.

어느 방송프로그램에 모든 음식을 끓여먹는 산골부부가 출연한 적이 있다. 심지어 콜라나 수박도 끓여먹는다고 했다. 체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였다. 만일 그런 방법으로 효과를 보려면 당연히 본래 기운이 따뜻한 음식을 끓여먹어야 한다. 기운이 서늘한 식품을 아무리  따뜻하게 끓여먹어도 결국 몸을 서늘하게 하는 것은 매한가지일 뿐이다.

식품은 나름대로 기운이 있다. 굽는다고 뜨거워지거나 얼린다고 차가워지는 것이 아니다. 삼라만상이 그렇듯이 환경에 따라 일시적인 변화는 있겠지만 본래의 기운은 변하지 않는다. 식품의 본래 기운은 섭취온도와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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