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팥죽은 있는데 왜 하지팥죽은 없을까
동지팥죽은 있는데 왜 하지팥죽은 없을까
  • 한동하 한의학 박사 / 한동하한의원 원장 (boram@k-health.com)
  • 승인 2015.12.22 11:09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거에는 팥죽이 사계절 내내 추억이었다. 엄마 따라 장에 갈 때면 언제라도 팥죽 한 그릇을 먹곤 했다. 요즘에는 동짓날이나 돼야 팥죽을 먹는데 이것도 생목이 올라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겨울에 식은 팥죽은 생목이 더 오른다.

동짓날에 팥죽 먹는 이유를 팥의 따뜻한 기운으로 겨울을 잘 이겨내기 위한 것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팥의 기운은 서늘한 편에 가깝다. 명의별록에서는 열중(熱中-열병의 일종)을 치료하고 약성론과 일화자제가본초에서는 열독(熱毒)을 풀어준다고 했다. 또 식료본초는 관절의 번열(煩熱)을 없앤다고 했다. 여러 본초서에 팥의 기운을 평(平)하거나 따뜻하다고 한 기록들이 있지만 실제 효능을 보면 서늘하거나 약간 차갑다고 보는 것이 맞다.

동짓날에 팥죽을 먹는 이유는 과거 풍습 중 하나로 팥죽을 먹으면 잔병이 없고 잡귀가 물러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팥에는 영양분이 풍부해 어쩌다가 먹는 특식으로 영양보충이 됐을 것이다. 또 과거에는 붉은색에 악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붉은색을 띤 팥이 선택된 것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팥죽을 먹기도 했지만 대문이나 담장, 길거리에 뿌리기도 했다.

다른 이유 중 하나로 팥은 다른 콩류에 쉽게 상한다는 것이다. 냉장시설이 없던 과거 여름에는 더욱 심했을 것이다. 팥이 잘 상하는 이유는 다른 곡류나 콩류에 비해 당분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팥은 당질이 약 56.6%를 차지해서 단맛이 비교적 강하다. 쉽게 세균의 배양지가 되는 것이다. 또 삶으면 수분함량이 높아지고 보호막이 파괴되면서 더욱 쉽게 상한다. 따라서 팥죽을 먹고 보관하기에는 여름보다 겨울철이 제격인 셈이다.

팥죽을 겨울에만 먹었던 것은 아니다. 삼복더위에 팥죽을 먹었던 풍습도 있었는데 당시 팥죽을 복죽(伏粥)이라고 했다. 여름철 팥빙수도 얼음과 팥의 서늘한 기운으로 더위를 식히기 위한 것이다. 이 경우 팥의 서늘한 약성을 그대로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팥죽을 먹은 후 잘 소화시키고 생목 오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처음 팥 삶은 거품 물을 버리고 조리하는 것이 상식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 소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사포닌 같은 영양소를 모두 버리는 셈이다. 거품은 바로 사포닌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팥 삶은 물은 반드시 재사용해야한다. 새알심을 만들 때 팥 삶은 물로 반죽해도 좋다. 굳이 버릴 필요가 없다.

 

팥이 붉은 색을 띠는 것은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 때문이다. 이 색소는 열매가 붉은색을 띠게 하는 색소로 강력한 항산화작용을 나타낸다. 과거 팥의 붉은색이 악귀를 물리친다고 했는데 우리 몸에서의 악귀는 바로 활성산소인 셈이다. 안토시아닌색소는 수용성으로 팥을 삶을 때부터 빠져나오기 때문에 팥 삶은 물은 버리지 말아야한다.

팥을 먹었다고 모든 사람이 생목 오르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속이 냉한 체질의 경우 배앓이를 하거나 생목이 오른다. 체질 때문인 것이다. 이 때 팥 삶은 물을 버리지 않아도 ‘생강’을 이용하면 해결할 수 있다. 생강은 성질이 따뜻하고 구역감을 없애는데 효과적이어서 소화를 잘 시키고 음식물이나 위산이 역류되는 것을 막아준다. 냉성의 팥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팥죽물이나 새알심을 만들 때 생강 달인 물이나 생강가루를 넣으면 생목 오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팥을 너무 오래 먹으면 몸이 마른다고 했다. 이는 체지방 분해가 아니라 강력한 이뇨작용으로 몸의 수분과 진액을 밖으로 몰아내기 때문에 피부가 검어지고 탈수를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겨울이라도 팥죽을 너무 많이 오래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팥죽은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별미이자 건강식이다. 꼭 동지팥죽이 아니더라도 하지팥죽도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으뜸이 2019-12-22 10:48:36
잘 설명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