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의 ‘아린 맛’이 독이라고? 무슨 소리!
도라지의 ‘아린 맛’이 독이라고? 무슨 소리!
  • 헬스경향 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 승인 2016.04.2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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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황사와 미세먼지가 일상처럼 흔한 날씨가 되면서 호흡기건강에 도움이 되는 식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중에서도 주목받는 재료는 단연 도라지다. 하지만 이를 일반적으로 섭취하는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약효가 좋은 도라지의 이로운 성분을 제거하고 먹는 것이다.

도라지는 한자로 길경(桔梗)으로 불린다. 도라지 ‘길(桔)’자에 이로울 ‘吉(길)’자가 사용된 것은 그만큼 몸에 이롭기 때문일 것이다. 또다른 이름인 고길경(苦桔梗), 고경(苦梗)은 쓴맛 때문에, 백약(白藥)은 흰 뿌리로 인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민요에 나오는 백(白)도라지는 흰색 꽃이 피는 도라지를 의미한다. 보라색 꽃이 피는 자(紫)도라지도 있다. 꽃잎이 2개로 핀 것은 겹도라지라고 부른다.

도라지는 주로 뿌리를 먹는데 이 부분은 아린 맛이 강해 생으로 먹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제거하기 위해 보통 껍질을 벗겨내 쌀 뜬 물에 하룻밤 정도를 담가둔다. 이런 방법은 그 역사가 꽤 오래됐다. 본초강목에는 ‘도라지는 겉껍질을 벗겨내고 쌀뜨물에 하룻밤 담갔다가 잘 게 썬 후 약간 볶아서 사용한다’고 기록돼 있다.

보통 아린 맛은 실체가 정확하지 않지만 알칼로이드, 탄닌, 무기염류나 유기염류, 테르펜, 사포닌 등 배당체 등이 만든다고 알려진 얼얼함을 말한다. 죽순이나 토란 역시 생으로 먹을 수 없을 만큼 아린 맛이 강하다. 투구꽃뿌리 등의 아린 맛은 알칼로이드계열 독성분의 맛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도라지의 아린 맛을 독으로 인식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 본초서 신농본초경(한나라)에는 ‘신농(神農)과 의화(醫和)는 맛이 쓰고 독이 없다고 했고 기백(岐伯)과 뇌공(雷公)은 달고 독이 없다고 했다’며 당시 의료인들의 도라지는 무독하다”는 의견을 인용했다. 그러나 이후 명의별록(양나라), 본초강목(명나라), 동의보감(조선) 등에서는 ‘도라지에는 약간 독이 있다’고 기록했다. 본초강목에는 아린 맛을 ‘험독(㿌毒;아린 독)’이라고 표현했다.

한동하 원장

독은 인체생리기능에 문제를 일으켜 몸을 해치거나 죽게 만드는 모든 물질이다. 하지만 한의서에서 ‘도라지 독’은 독성물질이 아니다. 맛으로만 구별해야 했던 한계였다. 도라지의 아리고 씁쓸한 맛은 플라티코딘과 같은 사포닌배당체, 과량의 이눌린, 테르펜, 쿠마린, 소량의 알칼로이드 성분에 의한 맛이다. 이 성분들은 건강에 이롭게 작용한다.

도라지뿌리에는 약 2% 정도의 사포닌이 있다. 이 부분의 사포닌은 껍질을 제거했을 때보다 그렇지 않았을 때 더 많다. 특히 도라지껍질에는 몸통에 없는 사포닌까지 함유하고 있다. 인삼에 대한 연구 가운데 ‘껍질에 사포닌 함량이 가장 높고 몸통 쪽으로 갈수록 사포닌 함량이 적어진다’는 결과와 마찬가지로 도라지도 껍질에 그 함량이 가장 많다.

만약 아린 맛이 걱정돼 도라지의 껍질을 벗겨내고 쌀 뜬 물에 우려야 한다면 이를 깨끗하게 씻은 뒤 벗겨낸 껍질을 건조, 차로 끌여 마셔보자. 꼭지부분도 떼어뒀다가 차를 우리는 데 함께 사용하면 좋다. 도라지꼭지에 독성이 있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도라지를 담가뒀던 쌀 뜬 물은 버리지 말고 된장국이나 밥물로 사용하면 좋다. 사포닌과 함께 다양한 생리활성물질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밥물로 활용할 때 아린 맛을 거의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와 관련, 과거에는 흰죽으로 도라지의 아린 독을 풀었다고 한다.

도라지효능이 전적으로 사포닌 때문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포닌이 가장 많이 함유된 껍질을 제거하는 것도 모자라 유용한 생리활성물질까지 우려내는 것은 너무 아깝다. 독은 먹어서는 안 되는 성분이지 먹기 어려운 성분이 아니다. 도라지의 아린 맛은 독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그냥 버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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