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성질’의 메밀, 냉면과의 궁합은 조화로워
‘찬 성질’의 메밀, 냉면과의 궁합은 조화로워
  • 헬스경향 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 승인 2016.05.11 16: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냉면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냉면(冷麪)이라는 한자 자체가 ‘시원한 면’이라는 의미다. 냉면은 기운이 차가운 메밀로 만들어졌고 얼음물에 넣어 먹기 때문에 더위를 식히는데는 그만이다. 하지만 몸이 찬 사람들은 먹기 힘들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냉면은 누구나 즐겨 먹는 국민음식이 됐다. 

‘냉면은 겨울음식’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이 말은 겨울에 냉면을 먹기 좋다기보다는 겨울에 쉽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라는 의미다. 과거 이북에서는 겨울철 동치미에 냉면을 말아먹었다고 한다. 이는 단지 메밀수확시기가 가을이고 겨울에 쉽게 동치미를 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을 때의 고육지책이었다. 추운 겨울에 굳이 서늘한 기운의 음식을 먹을 이유는 없다.

냉면의 주재료는 메밀 또는 모밀이며 한자로는 목맥(木麥), 교맥(蕎麥)이라고 한다. 모밀은 목맥에서 목밀로, 다시 메밀로 불리게 됐다. 혹은 산에서 나는 뫼(山)밀을 메밀로 이름 붙인 것으로 여겨진다.

메밀은 성질이 서늘한 곡물 중 하나다. 중약대사전을 보면 ‘메밀은 성질은 서늘하다. 위가 음식을 받아들이게 하고 장을 편하게 한다. 기운을 내리고 쌓인 것들을 없앤다. 뜨거운 물이나 열에 의한 화상을 치료한다’라고 했다. 식료본초나 동의보감에서는 ‘메밀이 기력을 더해준다’고 했지만 실제로 이러한 효과는 작다.

본초강목에서 언급됐듯이 ‘메밀은 위장의 더러운 기운을 없애 탁하고 체한 기운으로 인한 질병을 치료한다. 맹선의 기력을 더해준다는 표현은 잘못됐다’고 한 것이 타당해 보인다. 맹선은 식료본초의 저자다. 실제로 메밀은 다이어트, 변비에도 좋고 혈관을 깨끗하게 하는 효능뿐 아니라 해독작용도 강하다. 메밀의 다른 이름은 정장초(淨腸草). 내장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과거 문헌에는 ‘메밀은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식치)’ '메밀을 많이 먹으면 어지럼증이 생긴다(본초도경)’ ‘소화기가 허하고 냉한 자는 복용해서는 안 된다(득배본초)’ 등의 주의사항이 기록돼 있다.

본초강목에도 ‘메밀은 기가 성하고 몸에 습열(濕熱)이 있을 때 좋다. 위장이 약하고 찬 경우는 원기를 크게 소모한다’고 했다. 따라서 메밀은 평소 열감을 많이 느끼면서 더위를 쉽게 타고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동하 원장

하지만 실제로는 냉면 때문에 배탈이 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유는 냉면재료로 메밀가루와 함께 고구마전분과 밀가루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냉면집에서 겨자나 고춧가루를 놓은 이유도 맛과 함께 배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무도 매운 맛을 내지만 메밀전분의 소화를 돕다. 수육도 기운이 따뜻한 닭고기나 꿩고기로 대체할 수 있다.

물냉면은 평안도의 평양냉면, 비빔냉면은 함경도의 함흥냉면이 유명하다. 아마도 함흥은 추운지역이니 매콤한 비빔냉면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평양냉면은 메밀함량이 높지만 함흥냉면은 메밀함량은 낮으면서 대신 옥수수, 고구마, 감자전분이 많이 포함된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될 수 있다. 몸이 냉한 사람은 비빔냉면이 좋겠다.

인터넷에 보면 ‘메밀껍질에는 살리실아민이나 벤질아민이 있는데 냉면에 들어가는 무가 해독한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이는 쓴메밀(야생종)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냉면재료로 사용되는 단메밀(개량종)의 경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쓴메밀을 약차로 먹을 때는 껍질을 벗기거나 구증구포하면 해독이 된다.

냉면이 꾸준히 사랑받은 이유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음식궁합을 실현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메밀이 체질적으로 맞는 사람은 적지만 냉면은 무난하게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메밀은 서늘하지만 냉면은 나름대로 조화로운 궁합을 가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