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쌈 채소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상추다. 항간에 상추를 먹으면 졸린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경험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상추는 국화과로 한자어로 와거(萵苣)라고 한다. 본초강목에는 와거의 이명으로 와채(萵菜)나 천금채(千金菜)라고 했다. 본초강목에는 백거(白苣)라는 채소를 별도로 기록하고 있는데 백거는 백상추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색을 띠는 자거(紫苣; 적상추)에 빗대 부른 이름이다. 와거나 백거 모두 상추를 의미한다.
조선 후기 역사서인 해동역사에 보면 ‘수나라 사람들이 상추종자를 구할 때 하도 비싸게 사서 천금채라고 하며 고려인들은 생잎에 밥을 싸 먹는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고려의 상추가 품질이 좋았고 상추쌈을 고려시대부터 먹었다는 근거가 되는 기록이다. 우리말인 ‘상추’라는 이름은 생으로 먹는 채소라는 뜻의 ‘생채(生彩)’에서 유래된 것이다.
상추를 먹으면 ‘졸립다’는 것은 상식이다. 상추의 줄기를 꺾어 보면 우유빛의 액즙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락투카리움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다. 락투카리움은 알칼로이드 계열의 쓴맛을 내는 물질로 락투신, 락투서린, 락투신산으로 이뤄져 있다. 이 성분들은 진통작용과 최면작용이 있어 졸음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성분들을 ‘상추아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한의서에서는 ‘상추가 잠을 덜 자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당나라 때 식료본초 상추 편을 보면 ‘총명하게 하고 잠을 덜 오게 한다[聰明(총명), 少睡(소수)]’라고 기록하고 있다. 동의보감도 마찬가지이며 본초강목에는 ‘聰明’만 있고 수면에 대한 언급은 없다.
조선시대 승정원일기(정조 24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상추는 짜증나는 것을 제거하고 답답한 것을 시원하게 한다. 낮잠도 잘 안 오게 하고 밤에도 역시 잠이 잘 안 온다(晝寢姑無論 夜亦少睡矣). (중략) 점심 때 졸림을 막을 수 있어 잠을 피하는 처방(午間昏困者快祛, 眞可謂辟睡方)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잠을 줄인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상추를 먹으면 졸린다는 말이 회자됐다. 승정원일기에는 ‘일반인은 상추를 먹으면 졸린다고 하는데(食後昏困) 의서에서는 눈을 밝게 하고 잠이 잘 안 온다고 했다(明目少睡)’고 했다. 정약용의 다산시문집(제5권)에도 ‘상추는 비록 잠이 많아지게 하지만(萵苣雖多眠) 먹는 채소로 빼놓을 수는 없어’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러한 혼란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졸린다고 하고 누구는 머리가 맑아진다고 한다. 상추가 달라져서 혼란은 가중된다. 요즘 쌈으로 먹는 상추는 줄기에 우윳빛 액즙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우스재배가 많고 주로 어린잎을 쌈으로 먹기 때문이다. 다 자란 노지상추라도 꼭지를 떼고 먹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몇 장 먹었다고 잠이 오지는 않는다.
한의사들 사이에는 태음인이 상추를 먹으면 졸린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상추를 먹고 졸리면 태음인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락투카리움이 태음인에게만 민감하게 작용하는지는 고민해 볼 내용이다. 다만 상추는 성질이 서늘해 몸이 찬 냉체질의 경우는 적게 섭취하는 것이 좋다. 한의서에는 ‘큰 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몸을 약간 차게 한다’고 했다. 백상추가 적상추보다 기운이 더 차갑다.
이런 저런 고민을 떠나 요즘 상추로는 졸음이 거의 유발되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졸음이 올 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답답함이 풀어지고 머리는 맑아지며 각성된다. 따라서 수험생은 상추를 먹으면 안 된다는 내용도 걱정할 것이 없다. 상추쌈을 먹는다고 바로 졸음이 쏟아지지 않는다. 상추는 수면제와 각성제의 중간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