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갑자기 입이 돌아갔다고 해서 모두 중풍은 아니다
[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갑자기 입이 돌아갔다고 해서 모두 중풍은 아니다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 승인 2018.01.03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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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안면마비환자가 필자를 찾았다. 환자는 자신이 혹여 중풍이 아닐까 노심초사했다. 필자는 “입만 삐뚤어졌다면 중풍이겠지만 입과 함께 눈도 안 감겨서 중풍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환자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환자는 왜 자신의 증상이 중풍보다 심하냐고 도리어 따지는 것이었다.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안면마비는 구안와사(口眼喎斜) 또는 와사풍(喎斜風)이라고도 한다. 구안와사는 입과 눈이 한쪽으로 삐뚤어졌다는 의미다. 와사풍의 풍(風)자는 삐뚤어지는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두고 붙여진 이름이다. 중풍(中風)에도 풍(風)자가 있어서인지 와사풍을 중풍의 일종으로 여겨 지레 겁먹는 환자들이 많다.

한의서에도 구안와사는 중풍 편에 기록돼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중풍에 의한 것과 말초성을 딱히 구분짓지 않고 모두 구안와사라고 했다. 사실 중풍에 의한 경우는 입만 삐뚤어지고 눈은 문제가 없기 때문에 구와사(口喎斜)라고 표현했어야 했다.

안면마비 중 입만 돌아간 경우는 중추성으로 뇌출혈이나 뇌경색 등 중풍에 의한 것이다. 뇌종양에 의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면 입과 함께 눈이 감기지 않는다면 이는 말초성 안면마비에 해당한다. 심한 경우는 잘 때도 눈을 감지 못하고 뜨고 자야 하고 눈동자도 붉게 충혈돼 있다. 마치 토끼 눈 같다고 해서 토안(兎眼, 토끼눈증)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Lagophthalmos’라고 하는데 토끼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인 ‘lagoos(=hare)’가 어원이다.

사실 토끼도 눈을 감고 자지만 겁이 많아서 외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곧바로 눈을 뜨게 된다. 항간에 토끼는 눈뜨고 잔다거나 아예 자지 않는다는 말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눈과 함께 중추성과 말초성을 확실하게 구분짓는 방법으로는 이마 주름잡기가 있다. 눈을 치켜뜨게 해서 이마에 주름을 잡아보게 하면 중추성의 경우 정상적으로 주름이 잡히지만 말초성은 이마에 주름을 잡을 수 없다.

한쪽 이마나 눈은 양쪽 뇌에서 동시에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한쪽 뇌기능에 문제가 있어도 정상인 다른 쪽 뇌에 의해 보상되기 때문에 중풍으로 뇌가 손상돼도 눈 감기나 이마 주름잡기가 정상적으로 가능하다. 단 팔다리 마비증상이나 언어장애가 동반될 수 있다.

말초성 안면마비는 7번째 뇌신경인 안면신경이 귀 뒤의 유양돌기에서 밖으로(말초로) 빠져나오면서 발생한 것이다. 이곳은 뿌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만일 문제가 생기면 얼굴을 덮고 있는 한쪽 이마, 눈, 빰 모든 부위에 마비가 나타난다. 일반적인 안면마비를 보통 벨 마비라고 부르는데 말초성 안면마비 환자의 70~80%가 여기에 해당한다.

벨 마비의 경우 대부분 후유증 없이 회복되지만 간혹 귀 뒤쪽에 심한 통증이 동반되면 후유증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이는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의한 것으로 증상이 심하고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옛 어른들은 다듬이돌에 얼굴을 대고 자거나 창문을 열어놓고 자면 입이 돌아간다고 했다. 찬 자극을 받았다고 누구나 입이 돌아가진 않겠지만 온도 등 물리적인 자극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추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안면신경이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된다. 말초성 안면마비는 마치 안면신경의 감기와 같다. 하지만 감기증상이 있다고 해서 모두 독감은 아니듯이 입이 돌아갔다고 해서 모두 중풍은 아니다. 정리 장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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