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무가 소화제? 열받으면 소화효능 사라진다
[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무가 소화제? 열받으면 소화효능 사라진다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 승인 2018.02.2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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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는 소화도 잘되게 하고 기침, 가래 등을 삭이는 등 다양한 효능이 있는 채소 중 하나다. 과거 곡물을 주식으로 많이 먹던 시절에는 무만 한 소화제도 없었다. 무 자체도 좋았고 무씨 역시 나복자라고 해서 체기가 있을 때 많이 먹었다. 그런데 무작정 무를 먹는다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무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965년 중학교 입시에 다음과 같은 시험문제가 있었다. 엿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엿기름 대신 넣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었는데 출제자는 ‘디아스타제’를 정답으로 의도했다.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하지만 보기 중에는 ‘무즙’도 있었다. 교육부가 디아스타제만 정답이라고 하자 무즙이라고 적은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보이면서까지 항의했고 결국 법원의 판결로 무즙도 답으로 인정됐다. 소위 말하는 무즙 파동이다.

무즙이 정답이 된 것은 당연했다. 무에는 아밀라아제라는 소화효소가 많기 때문이다. 아밀라아제는 탄수화물(전분, 녹말)을 소화시키는 효소다. 디아스타제는 아밀라아제를 상품화시킨 이름으로 여러 가지 종류의 아밀라아제를 총칭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디아스타제나 무즙 속의 아밀라아제는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있다.

아밀라아제에는 알파-아밀라아제, 베타-아밀라아제, 글루코 아밀라아제(감마-아밀라아제) 등이 있다. 알파-아밀라아제는 동물이나 식물, 미생물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인간의 침 속에 많은 소화효소로 췌장(이자)에서도 분비된다. 전분을 빠르게 분해해서 액으로 만들기 때문에 액화효소라고 한다.

짜장면을 먹을 때 그릇 바닥이 물로 흥건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릇에 침이 떨어지면서 침 속의 아밀라아제가 짜장 속의 걸쭉한 전분을 물과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짜장면 그릇에 물이 생겼다면 그만큼 침을 많이 흘리면서 게걸스럽게 먹었다는 증거가 되겠다. 참고로 전분을 안 넣는 간짜장은 제아무리 침을 흘려도 물이 생기지 않는다.

베타-아밀라아제는 보리, 밀, 콩, 고구마 등 고등식물과 미생물에서 발견된다. 특히 맥아(싹을 띄운 보리)에 많다. 맥아는 식혜를 만들 때도 사용되는데 엿기름이라고도 한다. 전통적인 식혜는 엿기름의 아밀라아제가 쌀의 전분을 맥아당(포도당)으로 분해하기 때문에 특유의 단맛이 있다.

예로부터 어머니들은 식혜를 만들 때 밥알과 엿기름 거른 물을 항아리에 넣고 이불을 뒤집어씌워 따뜻한 아랫목에 두었다. 맥아 속의 베타-아밀라아제는 62도에서 활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아밀라아제의 존재는 몰랐겠지만 따뜻한 온도에서 잘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요즘처럼 밥통을 이용한다면 ‘보온’으로 맞추면 된다.

하지만 아밀라아제는 종류에 상관없이 80도 이상에서는 활성이 없어진다. 따라서 식혜를 만드는 과정에서 끓이거나 ‘취사’ 버튼을 누르면 식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엿기름을 걸러낼 때 너무 뜨거운 물에 풀어도 식혜는 제대로 안 만들어진다. 맥아를 소화제로 사용하는 경우도 볶거나 끓이지 말고 그냥 생으로 해서 가루나 환으로 먹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무의 아밀라아제도 열을 가하면 활성을 잃는다. 소화에 좋다는 무밥도 밥이 되는 과정에서 이미 효소의 활성을 잃었기 때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를 생으로만 먹으라는 말은 아니다. 무에는 매운맛 성분, 황화합물, 식이섬유가 풍부해 익혀 먹는 것도 좋다. 생선조림에 들어간 무는 비린내를 없애고 쉽게 상하는 것도 막아준다. 소고기뭇국의 무는 국물 맛을 시원하게 하며 기름진 음식 걱정을 덜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화에 도움을 얻고자 한다면 생으로 먹거나 김치처럼 저온 숙성상태로 섭취해야 한다. 무의 소화효능은 열 받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리 장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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