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웰빙의 역설] 팥에 독(毒)이? 팥 처음 삶은 물, 꼭 버려야 할까
[한동하의 웰빙의 역설] 팥에 독(毒)이? 팥 처음 삶은 물, 꼭 버려야 할까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9.08.21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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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방송에 등장하는 많은 요리연구가들이 ‘팥은 독이 있어서 한 번 삶은 물은 꼭 버리라’고 강조한다. 언제부터인가 팥과 관련된 이러한 내용은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주부들이 실제로 팥을 한번 삶아낸 물은 버리고 있다. 정말 팥에는 독이 있을까?

먼저 관련 문헌들을 찾아봤다. 필자가 확인해 본 현존하는 모든 한의서는 ‘무독(無毒)’이라고 적고 있다. 동의보감, 본초강목, 명의별록, 천금방, 식치, 탕액본초 등에 모두 ‘독이 없다’고 돼 있다. 팥에 독이 있다고 언급한 문헌은 없었을 뿐더러 팥을 한번 삶아낸 후 버리고 사용해야한다는 문헌적 근거도 찾지 못했다.

팥을 처음 삶으면 붉은색과 함께 거품이 난다. 붉은색은 바로 안토시아닌이다. 안토시아닌은 수용성으로 물에 쉽게 녹아난다. 안토시아닌은 찬물에도 쉽게 녹는다. 뜨거운 물이나 물에 넣고 끓이면 더 쉽게 녹아날 것이다. 안토시아닌은 항산화작용이 있는 대표적인 카로티노이드 색소성분이다.

팥을 삶을 때 나는 거품은 바로 사포닌(saponin)이다. 사포닌은 영어로 비누를 뜻하는 ‘soap’에서 유래했다. 비누처럼 거품이 많이 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삼이나 홍삼의 사포닌과 비슷한 구조지만 약간 차이가 있어서 팥과 같은 콩에 함유된 사포닌은 ‘콩 사포닌(soy saponin)’이라고 부른다. 팥을 한 번 삶아낸 물을 그냥 버린다면 많은 생리활성물질을 흘려보내는 셈이다.

팥이나 팥 삶은 물을 먹고 생목이 오르는(위 속에 들어간 음식물이 위액과 섞이지 못하고 역류하는 것) 이유를 팥의 독성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팥을 처음 삶은 물을 버리고 다시 삶으면 생목 오르는 것이 없어진다고도 한다.

팥을 먹고 생목이 오르는 이유는 독성 때문이 아니라 팥이 단지 소화가 잘 안 돼서다. 특히 소화기가 약하고 속이 냉한 소음인들은 생목이 잘 오른다. 소음인은 팥을 한 번 삶은 물을 버린 후 재차 삶아서 요리를 한 팥에도 생목이 오르고 소양인이나 태음인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섭취해도 생목이 오르지 않는다.

팥을 너무 장기간 먹으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진액이 마르면서 몸이 건조해지고 피부가 마르면서 검어진다고 했는데 이는 팥의 독성 때문이 아니라 팥이 이뇨작용이 강해 탈수를 유발해서다. 팥이 다이어트에 효능이 있어 팥물을 많이들 섭취하곤 하는데 팥물을 먹고 체중이 줄었다면 역시 탈수로 인한 수분손실 때문일 수 있다.

팔을 삶은 물은 한 번 삶아서 버려야한다는 주장을 누가 언제부터 했는지 모르겠지만 전형적인 ‘레퍼런스 오류’에 속하는 것 같다. 레퍼런스 오류란 다른 사람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잘못된 참고문헌까지 그대로 인용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 팥에 독이 있다면 다른 곡물에 포함된 독성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팥을 한 번 삶은 물을 버린다면 다른 모든 곡물 또한 한 번 삶은 후 첫물은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독이라고 부르는 성분은 생리적인 작용에 문제를 일으키는 성분이지만 팥에는 독이라고 부를 만한 성분은 없다.

따라서 팥을 삶아 낸 물을 버릴 필요가 없고 버려서도 안 된다. 팥은 그냥 섭취해도 안전한 곡물이다. 팥을 한 번 삶아서 요리할 필요가 있다면 단지 팥이 다른 곡물에 비해서 단단하기 때문이다. 만일 팥을 부드럽게 하기 이해 한 번 삶아냈다면 반드시 그 삶은 물도 요리에 재사용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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