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급성으로 시력을 잃는 반려동물을 본다. 그중에는 녹내장이나 백내장 같은 안구질환이 원인일 때도 있고 아무리 검사를 진행해도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이 경우 의심 가능한 질환으로 급성후천성 망막변성증후군, 영어로 SARDS(Sudden Acquired Retinal Degeneration Syndrome)가 있다. 안과에서 일반적인 기본검사와 추가적인 산동검사 시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시력이 없으며 빛에 대한 반사가 사라진 반려동물은 최종으로 망막의 기능유무를 평가하기 위해 망막전위도평가(ERG; Electroretinography)가 필요하다.
망막전위도평가란 망막에 존재하는 막대세포(rod cells) 및 원뿔세포(cone cells)가 만들어 내는 생리적인 전기반응을 측정하는 검사방법이다. 이를 통해 환자의 망막에 빛이 닿았을 때 각 세포의 전기적 반응을 측정해 망막의 기능이 어느 정도 작동하는 상태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 검사로 시력을 잃은 환자가 망막까지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질환에 걸렸는지, 빛은 도달하지만 망막의 기능이 없는 상태인지 아니면 안구이상은 없지만 상위신경계(대뇌 및 시신경)의 이상으로 인한 시력소실인지를 평가할 수 있다.
급성후천성 망막변성증후군은 현재까지도 뚜렷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질환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질환의 경과는 자가면역성으로 망막의 세포사멸이 발생하며 시력소실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염증성 반응으로 망막의 변화가 나타나기도 전에 시력을 소실하게 된다. 초기검사 시 진단을 혼동하게 하는 복잡한 질환이다. 대부분의 급성후천성 망막변성증후군을 앓는 반려동물은 중년령이며 수컷보다 암컷의 비율이 높다. 망막전위도검사상 완전한 망막의 기능소실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으며 시력소실을 보이기 전·후 행동학적 이상을 보이는 비율이 높았다. 대표적으로는 다음·다뇨증, 식욕증가를 동반한 비만 등이 있다. 실제로 혈액검사상에서는 간수치의 일부 증가, 부신피질항진증 등을 보이는 경우도 확인된다.
안타깝게도 뚜렷한 치료방법은 개발되지 않았다. 여전히 질환의 진단 및 발병과정과 원인에 대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치료법 중 면역억제치료나 줄기세포치료 등이 보고됐지만 그 효과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망막의 기능이 완전히 소실되기 전에 진단이 될 때는 회복하는 경우도 있다. 혹시라도 반려동물의 시력이 점차 떨어지는 것 같다고 느끼면 빠르게 안과검사를 받기 바란다.
만약 시력이 완전히 소실된 경우 반려동물은 스스로 길을 찾는 능력을 시력이 아닌 다른 감각에 의존하게 된다.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고개를 숙이고 콧잔등을 맹인의 흰 지팡이처럼 활용해 앞을 더듬으며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는 머리를 다칠 가능성이 커 동물병원에서 처방받은 넥카라(E-collar) 또는 머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보호대를 착용하는 것을 강력하게 권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