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잔소리 많이 하는 ‘의사’란 소리 듣고파”
“이제 잔소리 많이 하는 ‘의사’란 소리 듣고파”
  • 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3.11.08 0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김선민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
김선민 과장은 이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서 환자들의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면서도 그들의 숨은 문제까지 찾아내는 세심한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br>
김선민 과장은 이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서 환자들의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면서도 그들의 숨은 문제까지 찾아내는 세심한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심평원장에 취임할 때부터 사람들이 물었어요. 임기 끝나면 무슨 일을 하겠느냐고요. 제가 의사로서 첫발을 내디딘 분야가 산업의학(현재 명칭은 직업환경의학)입니다. ‘아! 그럼 현장으로 가야겠구나’ 싶더라고요.”

김선민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의 말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첫 여성 심평원장을 지낸 그가 임기를 마친 후 선택한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산재병원으로 80여년간 한자리를 지킨 태백병원. 그는 깊은 역사를 지닌 이곳에서 사명감을 갖고 환자들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자 현장으로 왔다고 했다.  

-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선택이었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서 현장에 몸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태백병원의 채용공고를 보게 됐다. 그래도 너무 멀지 않나 싶어 혼자 버스를 타고 와봤는데 걱정했던 것만큼 멀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가족들과 멀어졌지만 말이다(웃음). 하지만 직업환경의학을 전공하고도 오랫동안 정책분야에만 머물러 아쉬움이 컸다. 이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서 현장에 열정을 쏟고 싶다. 

- 직업환경의학은 좀 생소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학문인가. 

사람이 살면서 앓는 질병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데 그중 중요한 것이 개인의 직업과 근무환경이다. 직업환경의학은 직업이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것을 예방하고 직업성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학문이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대표적으로 근로자의 특수건강진단과 산업재해(산재) 판정을 위한 업무관련성평가를 수행한다. 

- 직업환경의학과장으로서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

태백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탄광과 진폐증이다. 태백은 일제강점기부터 석탄산업의 근간이 된 지역으로 폐질환자가 많다. 한 번 나빠진 폐는 다시 회복되지 않기 때문에 직업환경의학과에서는 석탄 광산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의 폐건강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진폐증이 의심되면 정밀검사를 시행한다. 진단 후에는 입원치료도 돕는다. 

진폐증환자 관리와 더불어 중요한 업무는 질병의 업무관련성평가이다. 직업이 질병에 미치는 요인에는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요인과 인체부담이 있는데 인체부담 중에서는 근골격계질환이 가장 중요하다. 이에 신경외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의료진과 함께 다학제진료를 시행,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업무관련성평가를 하고 있다. 해당 환자에 대한 소견서를 작성해 지사에 보내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산재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김선민 과장의 선택은 성기원 태백병원장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워낙 의사들이 부족해 시니어 의사들이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선민 과장은 현재 태백병원에서 가장 젊은 의사이다.
김선민 과장의 선택은 성기원 태백병원장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의사들이 부족해 아직 많은 시니어 의사들이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기 때문. 김선민 과장은 현재 태백병원에서 가장 젊은 의사로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 실제 현장에 와보니 어땠나. 개선점도 눈에 보였는지.  

우선 직업성질병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정책분야에 있을 때는 제도의 미비함이 먼저 보였는데 이제는 환자들의 상황이 어떤지,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의료서비스가 무엇인지부터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아직 시작단계라 개선점을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하지만 심평원에 있으면서 문제라고 느꼈던 것을 현장에서 더 뼈아프게 느끼고 있다. 지나친 행위별 수가제나 병원 간 진료연계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의사들이 이 지점에서 ‘심평원을 참 미워했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태백병원으로 오면서 임상의사로서 세운 진료철학이 있다면.

‘판단은 냉철하게, 개입은 따뜻하게 하자’고 결심했다. 특히 업무관련성평가를 하는 의사로서 환자의 상태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진단 후에는 눈에 보이는 문제뿐 아니라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숨은 문제까지 찾아내 세심하게 개입하고 싶다. 술, 담배하는 환자들에게는 끊으라고 쉼 없이 얘기한다. 고혈압·당뇨환자들에게는 한층 더 많이 잔소리한다. 그래도 싫은 내색을 비치는 환자들은 없다. 젊은 날에는 이렇게 못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떻게서든 딱 30초만 더 시간을 내 환자들을 살피자’라고 매순간 다짐한다. 

- 태백병원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근골격계질환 업무관련성평가에 대해 모범이 되는 소견서를 쓰는 전문의로 평가받고 싶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다른 진료과 의사와 직업력 조사를 하는 산업위생사, 무엇보다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잘 종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이왕 태백에 왔으니 지역주민들의 건강문제에 적극 개입하자는 목표도 세웠다. “저 병원에 가면 환자 말 잘 들어주고 잔소리 많이 하는 의사가 있더라. 저 병원으로 가자”라는 얘기가 나오면 참 영광스러울 것 같다. 의사는 우리 국민이 의료와 만나는 가장 첫 번째 접점이다. 

- 공단병원은 산재환자만 이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아직도 강하다.

태백병원은 태백뿐 아니라 강원 남부, 경북 북부지역까지 돌보는 지역거점 종합병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즉 인근 지역주민들이 언제든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공공병원이다. 특히 태백병원에는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 나온 의사들처럼 숨은 고수들이 많다.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적인 의사들은 아직 못 봤다. 환자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진짜 의사들이 모였으니 부담 없이 오셨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