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은 바비인형이 아니다”
“반려동물은 바비인형이 아니다”
  •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2.10.1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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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아닌 인간과 삶 공유하는 동반자

헬스경향에서는 우리사회 만연한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반려동물 건강이야기’ 특집을 전개합니다. 평생을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삶을 공유하는 반려동물.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지만 인간들의 잘못된 인식과 행위로 인해 다수의 반려동물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본지는 서울대 수의학과 황철용 교수의 ‘반려동물 건강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황 교수의 칼럼과 함께 본지에서는 관련 정보와 뉴스를 독자여러분께 제공할 예정입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편집자 주>

주말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우리 집 아이 둘(애견이다)을 데리고 동네 산책 중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서로 졸업 후 연락이 없다가 최근 동창모임에서 다시 조우한 관계지만 일요일 아침부터 요란하게 전화를 하는 이유가 조금 의아했다.
 


대뜸 그 친구가 말한다. “우리 딸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는데 이번 생일에는 강아지 선물로 소원을 들어주고 싶으니 잘 아는 곳을 소개 시켜주거나 아예 네가 구할 수 있다면 구해 줘”
 
내가 수의사이고 또 개도 기르고 있으니 당연히 이 부분, 완벽히(?) 해결 해 줄 수 있으리란 기대 속에 지인들은 가끔 내게 이런 부탁을 해 온다. 그러나 기대에 찬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내 대답은 사뭇 차갑기만 하다. “꼭 강아지를 생일 선물로 딸에게 안겨줘야 하겠니? 제수씨는 동의한 거니?”
 
반려동물, 개와 고양이등 인간과 친숙한 동물들을 소유하고 기르며 즐기는 개념으로 부르는 용어인 애완동물에서 평생을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삶을 공유하는 동반자적 개념으로 다시 이해해 부르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 고등학교 동창은 아직 강아지를 딸이 간절히 원하는 생일선물 후보인 애완동물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해 보였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지만 현재 국내에서 개,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하게 된 주 이유 중 상당부분이 자녀들의 성화 때문인 게 사실이긴 하다.

 인형같이 예쁜 강아지와 고양이를 싫어하는 어린이는 거의 없기에 현재 강아지와 고양이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가장 받고 싶은 선물 중 하나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 예쁘기만 한 강아지와 고양이는 큰 눈과 긴 금발머리에 예쁜 옷을 입은 ‘바비인형’과는 달리 움직이고, 소리 내며, 먹고 자고 배설하고 사랑받길 원하며 또 슬픔을 표현 할 줄 아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가정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보통은 육아정보를 부지런히 섭렵하고 육아에 필요한 용품 등을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엄마와 형제들 곁을 떠나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해 나가야하는 이제 겨우 생후 두 달 정도 된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사전에 이런 준비와 마음가짐을 가지는 가정은 과연 얼마나 될까?

개와 고양이를 또 다른 가족으로 맞이하려 하는 가정은 사람가족과는 차원이 다른 이 특이한 가족을 길게는 15년 정도 (요즈음은 수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많이 늘어났다) 책임감을 가지고 보살펴 줄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한다.  

자녀들이 원해 단지 선물로 아무 준비 없이, 특히 쉽게 흥미를 잃는 아이들 대신 뒷수발을 다 해야 하는 어머니들의 동의와 지원이 없다면 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또 하나의 가족은 가족이 아니라 성가신 애물덩이가 될 뿐이다. 새로운 가족 때문에 발생되는 경제적인 문제는 또 어떠한가?
 
아이들과 같이 반려동물들도 나이에 맞추어 동물병원에서 각종 전염병에 대한 예방접종도 해야 하고 사료 등 먹거리와 함께 꼭 필요한 용품들을 구비하는데도 적잖은 비용이 소요된다. 행여 건강에 문제라도 발생하면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 사람보다 비싼 병원진료비가 나가게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기꺼이 감수하고 진정 하나의 가족으로 인정하며 모든 가족들이 사랑하며 보살 펴 줄 수 있을 때만이 반려동물은 반려동물 다운 가치를 인정받고 인간과 함께 행복할 수 있다.

다음 주말, 우리 수의대 학생들과 함께 모 사설 애견보호소로 의료봉사를 간다. 그 보호소에는 이미 수용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유기견들이 있지만 우린 또 신규 입소된 유기견들의 예방접종을 하고 올 예정이다. 구석에서 웅크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신입 유기견들의 고통에 찬 모습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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