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견(犬)과 함께 자유롭게 길을 활보할 날이 올까”
“대형견(犬)과 함께 자유롭게 길을 활보할 날이 올까”
  •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2.12.0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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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11월 4일 갑자기 닥쳐온 한파로 무척이나 추웠던 날, 얼굴 가득 강아지털이 수북한 아프간하운드 종(種) 수컷 강아지 한 마리가 홀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왔다. 평생 가족이 될 녀석을 만나 무척 기뻤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꽉 막힌 올림픽대로 한 복판에서 내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다 자라면 25킬로에 육박하는 대형 종 수컷 강아지와 결혼도 안 한 총각이 이 복잡하고 분주한 인구 1000만의 대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아니, 당장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원룸 주인아저씨와 이웃들은 어떻게 설득할까?’ 번듯한 단독주택은 고사하고 겨우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12평짜리 원룸인 이곳에서 말이다.
 
보통 이러한 환경조건이라면 대형견은 고사하고 어떤 반려동물과도 함께 생활하기 쉽지 않지만 행운의 여신은 내편이었다.
  

애견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형견과 함께 도시를 활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국내에선 애견에 대한 선입견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 부족으로 제약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황철용 교수)


 
우선 여느 대형견처럼 ‘타이’는 아주 온순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철저한 사전교육을 받아 대소변을 완벽히 가리는 것은 물론 마구 짖음이 없는 (처음에는 벙어리인줄 알았다) 수도승 같은 강아지였다.
 
이런 이유로 원룸 주인아저씨는 어찌 이리 조용하고 점잖은 개가 있을 수 있냐며 흔쾌히 원룸입성을 허락했고 주위 이웃들 (지역 특성상 고시생들이 많았다)은 개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몰랐다고 다들 놀라워했다.
 
또 하나의 행운은 나의 직장이 수의과대학이라는 것이다. 이곳에는 하루에도 수십 마리의 동물들이 왕래하기에 동물에 대한 반감도 없고 병원 옆에 동물들의 재활치료를 위한 산책로와 안전펜스가 설치된 넓은 잔디밭도 있어 ‘타이’와의 생활이 가능했다. 관악산 밑에 조성된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함께 산책하고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의 행복도 누렸다.
 
결혼 후 우리 부부와 털북숭이 자식들과 함께 가족을 이뤘지만 좀 더 공간이 넓어진 아파트(그래봤자 소형 아파트이다)로 살림을 차린 것 외에는 총각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별반 없다.
 
사실 주기적으로 산책과 운동시킬 수 있는 공간이 주변에 있다면 몸집 큰 대형견과 대도시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애견 선진국이라는 미국, 특히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도시로 알려져 있는 뉴욕 맨하튼 거리에서 대형견과 함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가 않다. 만약 그 정도 크기의 대형견들을 서울 시내 광화문이나 홍대거리에 데리고 다닌다면 주위의 시선과 눈총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곳 뉴욕에서는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라 관심조차 받기 힘들다.
 
그 복잡한 거리에서 이리저리 잘도 주인들과 함께 걷는 대형견들을 보는 것은 신기함을 떠나 부럽기까지 하다. 맨하튼에 거주하는 뉴욕커들 대부분도 서울과 같이 정원 딸린 단독주택이 아니라 스튜디오 (우리나라의 원룸과 비슷함)나 레지던스 형태의 아파트에 거주하며 애견들과 생활하고 있다.
 
비슷한 광경을 학회 참석 차 방문한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목격했었다. 바쁜 출근 시간 자신들의 애견과 출근하는 시민들을 종종 보게 되었는데 특히 지하철 제일 끝 칸이 통째로 애견과 동행하는 승객들을 위한 전용 객실이 있었다. 대형견 모두가 시(市) 조례에 따라 입마개를 하고 조용히 주인들과 한자리를 차지하고 지하철로 출근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진귀한 풍경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뉴욕 맨하튼, 빈과 같은 도시들과 서울에서의 애견생활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 견주들의 마음가짐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모두 좋아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가지고 자신의 애견이 타인과도 융화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예절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뉴욕과 빈의 견공들과 그 주인들에 비해 우리나라 견공들과 주인들은 아직은 평균적으로 조금 무례한(?) 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애견에 대한 선입견도 문제다. 대형견들이 무조건 사납다는 편견과 함께 동물들이 병을 옮기고 지저분하다는 인식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대형견들의 공원 등과 같은 공공장소 출입을 당연히 금지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바뀌지 않고 있다.
 
다행히 서울시는 지난 9월 지자체론 최초로 동물복지과를 신설해 내년부터 실시되는 반려동물 등록제를 전담하는 것과 함께 인간과 동물들이 대도시에서 공존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제 이 복잡한 대도시에서 인간과 반려동물, 나아가 주변 모든 서울시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시민들과 함께 평화로운 공존의 생활을 만끽 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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