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의 아름다운 이별준비
반려동물과의 아름다운 이별준비
  •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2.12.17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생님! 그냥 집으로 데려가겠습니다.”
 
꼬맹이는 16살 시츄종 애견으로 심장질환을 앓고 있고 녹내장과 각막손상으로 인해 눈도 멀고 귀도 잘 들리지 않으며 몸 이곳저곳에는 조금은 흉측한 피부종양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노견(老犬)이다.
 
처음 내게 진료를 받기위해 내원했을 때는 어릴 적부터 고생했던 피부질환 외에는 별다른 건강이상이 없는 사랑스럽고 점잖은 전형적인 시츄종 애견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도 이제 견생(犬生)의 마지막 관문 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도 이제 견생(犬生)의 마지막 관문 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몇 년 전 건강검진 시 발견 된 비장(脾臟)내 종양이 며칠 전부터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복강 내로 출혈을 야기하고 있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응급수술을 실시해 비장을 제거해 주는 것이 의학적 정석이지만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학적 차원에서는 그렇지만은 않다.
 
꼬맹이의 배속 비장 내 종양은 한 달에 한번 초음파 검진 때마다 크기가 조금씩 커져가는 것이 확인됐다. 하지만 그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지금 앓고 있는 심장질환으로 인한 마취의 위험성이 컸고 고령의 나이로 인한 기본 체력저하로 수술 후 정상적 회복을 장담키 어려운 상태였다.
 
이런 사실을 꼬맹이 가족 분들, 특히 그를 생후 2개월 령 때부터 막내아들로 보살펴 온 아주머니께서는 아주 잘 숙지하고 계셨다. 이미 평균 수명을 다하고 있는 막내아들을 더 이상 차가운 수술대에 눕히고 싶지 않아하셨다.
 
무엇보다도 꼬맹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해 하는 가족의 품속에서 고통 없이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어 했다. 그날이 임박하면 꼭 주저 없이 알려달라는 부탁도 평소에 잊지 않았다.
 
미약하지만 종양에서 출혈이 시작 된 오늘이 그날이었다. 담당 수의사는 담담하게 꼬맹이 다리에 연결된 정맥주사 줄과 심장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기 위해 발바닥에 붙여 둔 심전도 센서와 직장체온 측정센서, 산소공급을 위해 목에 두른 튜브 등을 제거했다.
 
여리고 깊은 호흡을 반복하는 꼬맹이지만 자신의 몸 곳곳에 달려있던 각종 의료장비가 제거되고 미리 준비해 둔 커다란 수건에 온몸이 쌓여 얼굴만 밖으로 내어 놓은 그의 표정은 일순 무척 평안해 보였다. 그렇게 꼬맹이는 우리 의료진들의 배웅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꼬맹이는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이 오랫동안 사용했던 침대에서 별다른 고통 없이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한다. 가족들은 평소 소원을 가능하게 해 준 우리병원 의료진들에게 무척 감사하다며 밝은 표정으로 꼬맹이의 소식을 전해 주셨다. 생명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망 없는 환자의 아름다운 이별을 이해해 주고 가능케 해 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사람의 그것과 유사하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가족과 다름없는 반려동물이 사경을 헤맬 때는 모든 가족들이 회복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도 하지만 고통 속에 신음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어려워 그 삶을 가능한 빨리 끝내게 해 주는 경우들도 있다. 필자는 두 경우 모두 상황에 따라 그 가치를 평가해야만 한다고 본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내장파열과 다발성 골절이 발생한 애견을 9시간에 걸쳐 대수술을 받게 하고 일반 직장인 한 달 월급보다도 훨씬 많은 진료비용을 지불했지만 결국 애견이 사망한 가족과, 비슷한 상황에서 통증으로 신음하는 애견의 고통 해결을 위해 안락사(安樂死)를 선택한 가족 중 옳은 결정을 내린 가족은 어느 쪽일까?
 
전자의 가족은 그래도 가족이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자위(自慰)할 수 있고 후자는 회복불능의 고통 받는 동물에게 인간이 해 줄 수 있는 최후의 보살핌 중 하나를 신중하게 실행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일이며 그러한 결정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만약 반려동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매번 이런 상황 시 직접 그 반려동물에게 자신의 의사를 물어보고 싶은 게 당사자 가족뿐 아니라 수의사의 마음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그 생사의 극명한 반대적 결과를 매번 인간들이 결정해줘야만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가족이라면, 특히 노견과 함께 생활하는 가족이라면 한번쯤은 이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길 바란다. 그래야만 아름답고 소중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평소의 삶뿐 아니라 갑자기 닥칠지 모르는 이별의 순간 또한 아름답고 행복하게 의연히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