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 피부연고제 함부로 쓰지 말아야
애견 피부연고제 함부로 쓰지 말아야
  • 승인 2013.01.1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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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수의과대학 동물병원 피부과는 일반 동물병원에서 해결하기 힘든 난치성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반려동물들이 주로 내원하고 있다. 내원하는 반려동물들 다수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거나 서울 인근 도시에 거주하고 있지만 간혹 아주 먼 지방에서도 내원하는 경우가 있다.
 
그날도 피부과에는 멀리 대구에서 아침 일찍 병원 진료시간에 맞추기 위해 KTX 첫차를 타고 상경한 ‘콩삼이’가 조용히 주인아저씨 품에 안겨 피부과 진료실 문밖 대기실에서 자신의 진료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창 다른 동물들 진료로 바쁜 와중에 대기실에 잠시 다녀 온 우리 학부 실습생이 아주 걱정스러운 표정과 어투로 내게 진료실 밖 풍경을 알려줘 잠시 후 맞이할 환자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보지 않고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실습생의 안내로 진료실로 들어온 올해 8살 된 암컷 포메라니언 ‘콩삼이’는 포메라니언 특유의 풍성하고 탐스러운 털은 온데간데없고 얼굴 일부를 제외한 신체 모든 부위는 맨살이 들어나게 벌거숭이 상태였다.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수많은 반려동물들을 경험한 필자에게도 이 모습은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위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계가 없습니다. (사진제공 = 황철용 교수)
 
그러나 충격적인 피부상태와 달리 ‘콩삼이’의 현재 상태를 야기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동안의 ‘콩삼이’ 투병기를 장황하게 설명하며 주인이 진료진에게 내민 각종 피부질환 치료용 연고와 정체 모를 액체들로 가득 찬 불투명 병들 때문.
 
사실 ‘콩삼이’의 피부 문제는 3년 전 등 위의 아주 작은 동전만한 병변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동네 병원을 방문한 아저씨는 병원 진료비가 부담스러워 자가 진료를 결심한 이후 동네 약국에서 구입한 피부질환 치료용 연고제와 피부에 좋다고 알려진 각종 액체류로 치료를 직접 시작했다. 하지만 아저씨의 바람과 달리 병변부는 털이 빠지면서 더 넓어졌고 그럴 때마다 연고 종류를 다시 바꿔 치료를 강행했다.
 
검진 결과 ‘콩삼이’의 피부는 모낭이 모두 파괴되고 극도로 위축돼 있었고 얇아진 피부 두께로 인해 모세혈관들이 도드라져 보이는 동시에 풍선처럼 부푼 전형적인 호르몬성 탈모증으로 진단됐다. 이 질환은 부신이라고 하는 몸속 장기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이 과다 배출돼 발생하지만 콩삼이의 경우 피부질환 치료를 위해 아저씨가 그토록 열심히 애견 몸에 정성껏 매일 바른 피부질환 치료용 연고가 원인이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선택한 치료법이 오히려 병을 키운 셈이 된 것이다.
 
개와 고양이의 피부는 사람과 다르다. 온 몸에 털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떠나 우선 개와 고양이 피부의 산도는 약산성인 사람 피부와는 달리 중성에 가깝다. 이런 이유로 사람이 사용하는 샴푸제품을 개와 고양이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은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개와 고양이의 피부는 사람과 비교 시 산도 차이뿐만 아니라 피부 표피층 두께가 얇아 훨씬 연약하고 세균감염에도 취약하다. 따라서 사람 피부에 좋은 피부적용 약물이나 기타 피부에 유익하다고 알려진 기능성 제제들이 개와 고양이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물론 수의학에서도 특정 피부질환의 치료를 위해 사람에게 적용되는 피부치료용 연고 제제를 적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오랜 검증에 따른 용법 및 용량의 보정을 통해 수의사가 변형 적용하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다른 약물이나 처치 없이 원인이 되는 약물의 적용을 금지시키는 것만으로 끝난 필자의 처방을 못내 미덥지 않게 생각하며 진료실을 나선 주인에게서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이메일을 받았다.
 
이메일에는 오렌지 빛이 찬란한 사자 갈퀴와 같이 아주 풍성한 털을 가진 전형적인 포메라니언 애견 사진 한 장이 첨부돼 있었다. 사진에는 이제 제 모습을 찾은 벌거숭이 콩삼이가 자랑스럽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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