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필수의료 인력 확보, 의대정원 확충만이 답일까
[창간특집] 필수의료 인력 확보, 의대정원 확충만이 답일까
  • 한정선·이원국 기자 (desk@k-health.com)
  • 승인 2023.01.27 07: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제성 없으면 무용지물…정부차원 관리 시급
통합기관 설치해 지속가능 인프라 구축해야
필수의료과의 의사인력 부족으로 공공의료가 무너졌다. 이에 정부는 2020년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대정원 증원을 논의하기로 결정했지만 의료계는 필수의료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진단방랑(Diagnostic Odyssey)이라는 용어가 있다. 진단방랑은 어떤 병인지 알 수 없어 전국의 병원을 전전하는 행위로 희귀·난치질환자들이 겪는 사회적 아픔을 총칭한다. 하지만 이제 필수의료과 의사인력 부족으로 머지않아 전 국민이 이 진단방랑을 겪을 전망이다.

필수의료란 ▲생명에 직접적인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의료분야 ▲지역적 특성 또는 시장수요 부족으로 제대로 제공되기 어려운 분야 ▲전공의충원율이 평균에 미달하는 과목이다. 이에 대한민국의학한림원에 문의한 결과 현재 국내에서는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신경외과 등이 가장 시급한 분야라는 답변을 들었다.

■흉부외과, 수가인상해도 인력난 여전

먼저 흉부외과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지원자는 없는데 흉부외과전문의의 60.3%를 차지하는 50대 의료진이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퇴직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반면 흉부외과 진료건수는 크게 증가했다. 2011년 7482건이었던 개심술은 2020년 1만11건으로 33.8% 늘었다.

정부는 이미 2009년 전공의지원율이 저조한 흉부외과 인력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개의 처치 및 수술의료행위에 관해 100% 수가가산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제도가 본격 시행된 2010년부터 매년 소요된 재정은 예상범위를 훌쩍 넘겼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7년 공개한 ‘흉부외과 및 외과전문의 수가가산제도 개선방안’ 연구결과를 보면 흉부외과의 연도별 전문의가산금은 2010년 613억원, 2011년 555억원, 2012년 684억원, 2013년 713억원, 2014년 791억원이었다. 이 때문에 외과·흉부외과 수가가산제도문제가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김경환 이사장은 “단순한 수가인상이 아니라 흉부외과전공의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고려해야 한다”며 “외국처럼 정부가 적극적으로 전공의 TO를 관리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대정원 확충하면 필수의료지원자도 증가?

정부는 최근 필수의료분야에 ‘공공정책수가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의료수가를 조정해 전공의들을 유인하겠다는 뜻이다. 또 새해 대통령업무보고에서 의대정원 확충과 관련, 신속히 의료계와 협의를 시작하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공정책수가는 시간벌기에 불과하고 의대정원 확대 역시 치밀한 세부안이 없으면 필수의료인력 충원은 요원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공공정책수가를 도입해도 병원은 필수의료과가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추가고용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흉부외과수가가산금의 50~95%가 의료기관의 수익으로 이어졌지만 흉부외과전문의 고용은 늘지 않았다. 지난해 간호사사망사건으로 논란이 된 서울아산병원이 대표적인 예다.

또 의대정원을 확충해도 제도화를 통한 강제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현행 의료법시행규칙에 따르면 300병상 이하 종합병원은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중 3개 진료과목에 전속 전문의를 두고 입원환자에 비례해 의사를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고 의무규정이 아니다 보니 필수의료인력을 뽑지 않고 있다. 과거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가 지적했듯이 흑자가 나도 더 수익이 발생하는 진료과에 병상과 인력을 배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과 김윤 교수는 “미국은 KAMC라는 보건의료인 양성책임기관을 두고 산하에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 중”이라며 “필수의료는 국민생명과 직결된 분야로 자율적으로는 균형공급이 어려워 국가가 직접 개입할 필요성이 있으며 어느 정도 강제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필수의료전공의에 대한 세심한 대책 필요

2019년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2년차 전공의가 당직근무 중 쓰러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사망 당시 그는 35시간 연속 근무 중이었고 법으로 정해진 주당 최대 80시간 근무를 넘어 110시간을 초과해 근무했다.

2022년 대한심혈관중재학회에서는 온콜당직에 대한 설문을 진행한 바 있다. 조사결과 응답자의 2/3가 월 7일~15일간 온콜당직을 섰다. 하지만 노력과 수고에 대한 보상은 거의 없거나 매우 적다. 게다가 전날 밤을 새우며 응급수술을 해도 다음 날 진료와 시술·수술을 해야 한다.

의료진의 번아웃은 환자안전과 직결돼 있다. 전문의가 아프거나 갑작스러운 공백이 생기면 모든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또 현재 필수의료과는 다른 과에 비해 더 긴 시간의 수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의대정원이 확충돼도 이에 대한 대책이 수립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확률이 높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가장 큰 문제는 필수의료 관련 담당부서가 흩어져 있고 심지어 1~2년만에 수시로 담당자가 바뀌는 만큼 통합전문기구와 감사기관을 설치해 지속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