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건강학] 왜 나는 이 약에 효과가 없을까
[유전자 건강학] 왜 나는 이 약에 효과가 없을까
  • 박웅양 삼성서울병원 유전체연구소장(지니너스 대표)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3.06.2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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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양 삼성서울병원 유전체연구소장(지니너스 대표)

우리가 과거보다 오래 살 수 있게 된 것은 약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약은 항생제이다. 이제는 상처가 나도 감염되거나 사망하는 일은 없다. 결핵환자도 많이 줄어들었다.

항암제의 효과는 더 극적이다. 통계에 의하면 2000년 이전 한국인 암환자의 5년생존율은 50% 이하였지만 2020년에는 평균 70% 이상으로 늘었다. 항암제가 크게 기여한 것이다.

과거에는 고령자 중 뇌혈관질환, 고혈압으로 사망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최근 20년에 걸쳐 그 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을 조절하는 약들이 개발돼 만성질환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약은 잘 만들어져 치료효과가 있다. 정밀한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가 증명됐기 때문에 허가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생활에서 사람마다 약물에 대한 치료효과가 다르다고 느낀다.

예상하는 것처럼 이는 개인의 유전체가 달라서다. 약을 흡수하고 대사·분비하는 과정에는 수백여 개의 유전자가 관여한다. 사람마다 걸리는 병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약물 대사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조합과 기능도 개인마다 다르다. 따라서 같은 약이라도 사람마다 효과가 다를 수 있다. 이렇게 사람마다 약물효과가 다른 것에 대해 유전자의 조합으로 설명하는 것을 ‘약물유전체(pharmacogenomics)’ 분석이라고 한다.

영국 국민건강보험(NHS) 자료를 분석한 듀크대학교 로지즈 박사가 2003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약은 사람의 30~50% 정도에서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진통제는 90% 이상으로 대부분의 환자에서 효과가 있지만 편두통이나 류마티스관절염 같은 질환의 약은 환자의 50% 정도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통계자료는 우리가 느끼는 약에 대한 치료효과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쯤에서 생각해보자. 우리가 약을 복용할 때 눈여겨보는 부작용이나 용법, 용량에 대한 설명에는 같이 복용하면 안 되는 약물상호작용에 대한 설명은 있지만 어떤 사람에서 효과가 있는지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유방암환자에게 사용하는 에스트로겐 수용체 조절제인 ‘타목시펜’의 경우 약물 특성 요약에 타목시펜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효과를 감소될 수 있는 약물을 피하도록 주의를 요구한다. 하지만 타목시펜의 대사에 관여하는 CYP2D6의 유전적 특성에 대해서는 고려하지는 않는다.

실제 CYP2D6 유전자 타입에 따라 10명 중 약 1명은 약물대사가 원활하지 않아 타목시펜의 치료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환자의 경우에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CYP2D6에 의해 대사되지 않는 다른 종류의 에스트로겐 조절제를 선택할 수 있다.

또 UGT1A1 유전자 타입에 따라 약물의 배설에 관련되는 활성이 감소하거나 없어지는 경우에는 이리노테칸이라는 항암제의 혈중 농도가 증가해 골수 면역억제 또는 심각한 설사와 같은 항암제 부작용이 일어난다. 대략 한국인의 50% 정도는 UGT1A1의 활성이 낮은 편이다.

CYP2C19 유전자검사를 통해 클로피도그렐의 처방을 결정하기도 한다. CYP2C19 유전자의 기능이 줄어든 경우 항혈소판 기능이 감소, 심근경색 이후 심혈관계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기 때문에 다른 약물을 선택하게 된다.

이처럼 유전형에 따라 치료효과가 달라지거나 독성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진 약은 200여종에 이르며 PharmGKB (pharmgkb.org) 데이터베이스에 잘 정리돼 있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 FDA나 유럽 EMA에서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약물유전체검사가 필요하거나 권장하는 약에 대한 리스트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 FDA에서는 120여개 약에 대해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미국인 9000명을 대상으로 6개 유전자에 대해 분석한 결과 90%에서 약의 효과에 관련된 변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물유전체검사를 하면 대부분에서 약물 처방에 필요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PMDA도 50여개 약물에 대한 약물유전체 정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개인의 약물유전체 정보를 분석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정밀의료, 즉 말 그대로 개인에게 맞는 약을 찾아주기 위한 것이다. 치료효과가 높고 부작용이 적은 약을 적절한 시기에 처방하는 것이 바로 정밀의료이다. 정밀의료는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효과도 높일 수 있다. 불필요한 처방과 병원방문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약물유전체 정보 분석을 통해 새로운 약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약물반응과 유전체정보를 통합해 분석하면 알지 못하던 치료작용기전을 알 수 있고 새로운 유전자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인의 특성에 기반한 대규모 약물유전체분석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제약사와 벤처에도 신약개발에 필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또 일반 국민과 환자의 약물유전체를 분석할 수 있게 함으로써 병원에서 환자에게 맞는 약을 정확하게 처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국민건강보험을 포함한 의료비를 절감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정밀의료시대에 우리 국민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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