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영 교수의 꿀잠비책] 낮에 끊임없는 졸음의 고통 ‘기면병’
[정기영 교수의 꿀잠비책] 낮에 끊임없는 졸음의 고통 ‘기면병’
  • 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ㅣ정리·유인선 기자 (ps9014@k-health.com)
  • 승인 2023.11.3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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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밤에 못 자는 것만큼 괴로운 증상이 낮에 참아도 참아도 졸린 증상이다. 낮에 심하게 졸린 증상을 주간졸림이라고 한다. 국내에는 주간졸림을 호소하는 사람이 인구의 약 12% 정도로 주간졸림은 불면증만큼 흔한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낮에 졸린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크게 4가지 원인을 꼽아 볼 수 있다. 첫째는 밤잠이 부족해서다. 스스로에게 필요한 수면시간보다 부족하게 자서 낮에 졸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둘째는 수면시간은 충분하지만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아 충분한 회복수면을 취하지 못한 경우다. 수면무호흡증이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셋째는 스스로의 생체시계주기와 사회활동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타입, 일명 올빼미형은 아침에 보통 사람과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서 출근하니 일어나기 힘들고 오전에 심하게 졸려 한다. 세 가지 원인이 없는데도 낮에 심하게 졸리면 마지막으로 기면병 때문이다. 기면병밤에 충분히 자고 수면의 질도 나쁘지 않으며 생체시계도 중간형인데도 낮에 수시로 졸림이 발생하는 수면질환이다. 오늘은 기면병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기억에 남은 기면병환자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다. 20대 대학생 A씨는 밤에 충분히 자고도 낮에 졸려서 수업을 듣기 어려워했다.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갑자기 조는 경우가 있어 대인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증상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됐는데 대인관계에서 계속 오해를 받고 스스로도 자신감이 떨어지자 결국 휴학하고 집 밖에는 거의 나가지 않게 됐다.

A씨는 웃거나 감정적으로 흥분하면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지면서 주저앉거나 쓰러지는 증상도 있었다. 그 때문에 한번은 수업이 끝나고 기분이 좋아서 친구들과 몰려나가다가 온몸에 힘이 빠져 바닥에 쓰러졌는데 장난치는 줄 알았던 친구들에 의해 끌려다닌 경험도 있었다. 이러한 일상이 반복되자 A씨는 자신감과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점차 위축돼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게 됐다.

기면병은 주간졸림을 핵심증상으로 하는 수면질환으로 수면의 양이나 질이 정상 범위인데도 졸린 것이 특징이다. 기면병에서 낮에 졸린 증상은 그저 하룻밤 못 자서 졸린 것과 차원이 다른 졸림 증상이 나타난다.

기면병환자들은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졸음이 오는 경우가 많다. 졸음이 발작적으로 나타난다고 해서 졸음발작이라고도 한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정말 졸릴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졸음이 온다는 것이다. 가령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졸리기도 하고 재미있는 영화 1편을 다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수업·운전·독서 등 단조로운 활동을 할 때는 얼마나 졸릴지 상상이 갈 것이다.

기면병환자들의 70-80%에서는 웃거나 흥분할 때 근육의 힘이 빠지는 탈력발작이 동반된다. 탈력발작이 있는 기면병을 1형 기면병, 그렇지 않은 경우를 2형 기면병으로 분류한다.

탈력발작은 주간졸림증상에 버금가거나 때로는 더 심하게 일상생활을 제한한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서 웃으면 얼굴근육·턱·어깨·무릎 등에서 힘이 빠져서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말이 제대로 안 나오거나 ▲무릎이 꺾이거나 ▲심지어는 바닥에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

짧으면 수초에서 길면 1~2분 정도까지 힘이 돌아오지 않는다.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기고 때로는 외상까지 입는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탈력발작이 실신과 다른 점은 의식을 잃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황을 다 인식하고 있지만 통제가 안 돼 오히려 의식을 잃을 때보다 더 괴롭고 힘들 수 있다.

기면병의 원인은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다. 하지만 뇌의 시상하부에서 각성을 유지시켜주는 신경전달물질인 히포크레틴(오렉신) 생성이 부족한 것을 주요원인으로 보고 있다. 히포크레틴은 각성상태를 강화시켜 수면상태로 넘어가지 않게 해 주는 역할을 하고 렘수면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히포크레틴이 부족한 기면병은 낮에 각성이 유지되지 못하면서 갑자기 졸음이 와 꿈을 꾸거나 렘수면중에 나타나는 근육마비 증상이 불현듯 나타날 수 있다.

최근 필자의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기면병환자들이 증상이 나타나서 진단받기까지 약 11년 정도가 걸렸다. 진단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졸린 증상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심각성을 잘 모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탈력발작은 초기 경미할 때는 증상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결국 기면병에 대한 인식부족은 오랜 기간 오해와 차별, 사회활동위축 등으로 이어지고 삶의 질을 떨어트리게 된다. A씨의 경우도 학교부적응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으로 오해와 편견 속에서 15년 정도를 힘들게 살아왔다.

다행히 기면병은 주간졸림과 탈력발작을 조절하는 좋은 치료약제가 개발돼 있고 효과도 비교적 우수해 잘 관리하면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물론 근본 치료제는 아니기에 지속적인 약물복용과 함께 규칙적인 생활 및 수면위생을 잘 지키는 것이 증상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

국내 기면병환자는 인구 10만명당 약 10명 정도로 조사됐다. 하지만 건강보험자료를 기반으로 추정한 수치이기 때문에 모르고 진단받지 못한 환자들까지 포함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기면병은 심하게 졸릴 때 잠시 낮잠을 자면 주간졸림 조절에 큰 도움이 된다. 학교나 사회에서 기면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낮잠을 잘 수 있는 배려를 조금만 해준다면 기면병환자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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