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영 교수의 꿀잠비책] 뇌 각성을 유지하는 오렉신과 새로운 치료약제의 개발
[정기영 교수의 꿀잠비책] 뇌 각성을 유지하는 오렉신과 새로운 치료약제의 개발
  • 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ㅣ정리·유인선 기자 (ps9014@k-health.com)
  • 승인 2023.12.1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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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오렉신은 뇌 시상하부에서 생성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수면과 각성주기를 조절해 낮에는 각성상태를, 밤에는 수면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기여한다.

오렉신의 발견역사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두 개의 독립된 연구팀이 각각 이 신경펩타이드를 발견했다. 한 팀은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에 소속된 로이스 데 레세아(Luis de Lecea) 박사와 그의 동료들로 이 물질을 '하이포크레틴'이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뇌의 특정부위에서만 나타나는 두 가지 펩타이드를 발견하고 이것이 신경전달물질로 기능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야마가타 대학교의 야나기사와 마사시(Masashi Yanagisawa) 교수와 그의 팀이 오렉신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물질을 발견했다. 이들은 해당 물질이 뇌에서 식욕과 에너지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연구를 통해 오렉신·하이포크레틴시스템이 수면과 각성주기, 특히 렘수면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밝혀냈다. 더 나아가 기면병과 같은 수면장애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이러한 발견은 수면연구와 신경과학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고 오렉신·하이포크레틴이 사람의 생리학 및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추가연구의 기반이 됐다.

오렉신은 낮에 각성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수역할을 한다. 기면병은 바로 이 오렉신이 부족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하는 수면장애다. 만성불면증환자들은 종종 오렉신 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밤에 오렉신 활동을 억제하면 수면을 유도하고 안정적인 수면을 유지할 수 있다.

만성불면증은 뇌의 과각성상태를 주요특징으로 한다. 과각성상태는 뇌가 수면모드로 전환돼야 하는 밤에도 각성상태가 계속돼 안정적인 수면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렉신을 억제하는 약물은 수면을 유도하고 수면 중 각성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수면제로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오렉신길항제 계열의 수면제를 이중오렉신수용체길항제(이하 DORA)라고 부르는데 밤에 불필요한 각성을 줄이고 자연스러운 수면유도효과를 제공한다. DORA는 201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사용승인을 받았다. 현재까지 3종류의 약제가 개발돼 미국, 유럽 및 일본 등지에서 처방되고 있다.

기존 가바 계열 수면제는 서파수면과 렘수면을 줄이는 반면 DORA는 수면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 수면제와 달리 내성과 의존성이 낮은 새로운 개념의 수면제로 주목을 받고 있다. 단 아쉽게도 국내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기면병은 오렉신이 부족해 낮에 각성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는 질환이다. 기존 각성제가 뇌를 강제로 각성시킨다면 오렉신작용제는 오렉신을 활성화시킨다. 기면병의 근본적인 원인이 오렉신 부족임을 생각하면 오렉신작용제는 보다 더 근본적인 치료대책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기면병환자를 대상으로 한 오렉신작용제에 대한 2상 임상연구가 발표됐는데(Dauvilliers Y, Mignot E, del Río Villegas R, et al. Oral Orexin Receptor 2 Agonist in Narcolepsy Type 1. N Engl J Med. 2023;389(4):309-321. doi:10.1056/NEJMoa2301940) 오렉신작용제는 뇌·혈관장벽을 통과해 뇌의 오렉신수용체와 결합, 오렉신의 자연적인 역할을 모방해 각성을 촉진했다. 하지만 일부환자에서 간효소상승이 관찰돼 임상연구가 조기종료됐다. 이 연구는 기면병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부작용을 줄여야 실제 임상에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숙제를 던져줬다.

오렉신은 수면·각성조절뿐 아니라 식욕, 에너지대사, 자율신경계활동, 감정, 스트레스반응, 보상시스템 및 중독메커니즘과도 관련이 있다. 많은 수면장애환자가 수면문제뿐 아니라 체중, 감정, 행동변화를 경험하고 호소한다. 기면병과 만성불면증에서 나타나는 식욕, 에너지대사, 감정변화는 오렉신의 역할과 연관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오렉신 관련 약제들이 기존 약제보다 더 생리적이라 할 수 있다.

오렉신의 발견은 기면병 원인을 밝히고 근본적인 치료제 개발에 진전을 이루게 했다. 또 만성불면증에서 보다 자연스러운 수면을 유도하고 의존성이 적은 약물을 개발할 수 있게 해 수면장애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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