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영 교수의 꿀잠비책] 잠이 너무 많아요…과다수면 보이는 다양한 수면질환
[정기영 교수의 꿀잠비책] 잠이 너무 많아요…과다수면 보이는 다양한 수면질환
  • 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ㅣ정리·안훈영 기자 (h0ahn@k-health.com)
  • 승인 2023.12.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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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대학생인 22세 여성 C씨는 일 년에 몇 차례씩 하루종일 잠만 자는 증상을 겪는다며 수면클리닉을 방문했다. 자는 시간이 하루에 거의 16~20시간 정도나 되고 하루종일 자다가 잠깐 깼을 때는 화장실을 가고 먹고 난 후 바로 다시 잠든다고 한다.

당연히 그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았다. 학교 가는 것도 힘들고 가더라도 수업 중에 아예 엎드려 자야만 했다. 이뿐 아니라 친구들도 만나기 힘들었다. 또 과다수면 상태일 뿐 아니라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평소보다 많이 먹고 성욕도 증가한다고 했다. 증상은 짧게는 2주, 길면 2달 정도 지나면 저절로 회복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정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일 년에 서너 차례 이런 증상을 겪는다고 했다.

병력을 들어보니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증상이 시작됐다고 했다. C씨는 과다수면 및 감정변동으로 인한 양극성장애로 진단받고 관련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었다.

밤에 비정상적으로 많이 자는 것을 과다수면이라고 한다. 성인의 경우 하루 이틀이 아닌 지속적으로 11시간 이상을 자는 양상을 보일 때 병적인 과다수면 상태로 정의한다. 대표적인 질환이 특발성 과다수면증이다. 특발성 과다수면은 대개 10대 후반에 시작되고 원인은 명확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지속된다.

과다수면증환자들은 밤에 많이 자기도 하지만 아침에 깨우면 잠에서 깨지 못하고 계속해서 잠에 취한 상태로 정신이 바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낮잠도 자주 자는데 1시간 이상 길게 자고 자고 나도 개운하거나 머리가 맑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지고 무기력해진다.

얼핏 보기에는 탈력발작이 없는 2형 기면병과 유사해 보일 수 있지만 기면병은 야간수면이 비정상적으로 길지 않고 짧은 낮잠을 자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개운함을 잘 느낀다. 또 낮에 졸리는 증상이 갑자기 발작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럼 C씨는 특발성 과다수면증일까? 이 환자는 과다수면 상태가 일정한 기간에 나타나고 주기적으로 재발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클라인-레빈증후군’ 사례이다. 클라인-레빈 증후군은 매우 드문 질환으로 아직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자가면역기전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클라인-레빈증후군은 잠을 많이 잔다는 점에선 특발성 과다수면증과 같지만 일정 기간만 과다수면증을 보이고 어느 정도 지나면 저절로 회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과다수면 기간에 억지로 깨우면 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몽사몽 헤매거나 정신이 들지 않아 좀비처럼 어슬렁어슬렁 거리기도 한다. 또 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사물이 왜곡돼 보이거나 현실감을 전혀 못 느끼는 등 비현실감을 보이는 것도 특징. 과다수면과 함께 의식 변동, 감정변화, 식욕 및 성욕, 행동 등의 변화가 동반되는 경우도 많다.

감정의 변화가 주기적으로 나타나 조울병과도 어느 면에서는 유사하다. 실제로 리튬 같은 감정 조절제가 클라인-레빈증후군에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과다수면 기간이 아닌 경우에는 완전히 정상으로 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아직 그 원인을 잘 모르지만 아마도 수면, 식욕, 성욕 및 감정 등의 변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시상하부에 이상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다수의 뇌영상 연구에서 그 가능성을 시사하는 소견을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환자의 1/3에서 출생 시 난산, 지연분만, 저산소증, 조산 등 산과적인 위협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시상하부 등 수면·각성 조절 중추에 모종의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다수면을 촉발하는 인자로는 상기도 감염, 음주, 머리 외상 등이 있으며 이런 촉발사건 후에 과다수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수여서 이런 요인들이 자가면역시스템을 자극해 증상을 초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지나치게 많이 자는 과다수면증은 수면부족이나 다른 수면질환으로 인한 수면의 질 저하, 생체시계 주기의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어야 진단이 가능하다. 과다수면증은 비교적 드문 수면장애이지만 주간졸림이 중요한 원인으로 이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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