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영 교수의 꿀잠비책] 꾸벅꾸벅…커피 많이 마셔도 졸린 이유
[정기영 교수의 꿀잠비책] 꾸벅꾸벅…커피 많이 마셔도 졸린 이유
  • 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ㅣ정리·안훈영 기자 (h0ahn@k-health.com)
  • 승인 2024.01.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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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택배업에 종사하는 40대 초반의 남성이 요즘 잠이 잘 안 온다며 진료실을 찾았다. 하루 4시간 정도 자는데 그래도 낮에 별로 졸리지 않았다고 한다. 커피를 몇 잔 마시냐 물었더니 믹스커피로 하루 25잔 정도 마신다고 했다. 잘못 들었나 싶어 재차 물었으나 같은 대답이었다. 원래 밤에 누우면 바로 잤는데 요즘 잠들기가 어렵고 낮에도 졸리다고 호소했다.

우리나라 사람의 커피소비량은 2020년 기준 성인 1인당 연간 367잔으로 전 세계 1인 평균 소비량인 132잔보다 약 2.7배 높은 수준이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이 하루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커피시장규모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1년 우리나라 커피시장규모는 약 43억달러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이러한 성장세는 우리나라 커피문화의 변화, 커피전문점의 증가, 커피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호를 반영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수면전문가인 필자의 견해로는 우리나라의 높은 커피소비량에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적은 수면시간과 가장 늦게 자는 수면습관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커피의 주성분인 카페인은 교감신경을 항진시키고 아데노신 수용체를 차단해 피로감을 줄이고 각성효과를 나타낸다. 아침에 기상해 낮에 활발히 신체·정신적인 활동을 하면 뇌 안에 아데노신이 점차 쌓이면서 수면요구를 올리는 기능을 한다. 보통 16시간 정도 깨어 있으면 수면압력이 임계치에 도달해 밤에 자연스럽게 잠이 온다. 잠들면 쌓여 있던 아데노신은 급격히 감소하면서 아침에 일어날 때는 최저 상태가 돼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준비가 된다.

우리나라 사람의 수면부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44%가 7시간 미만 수면을 취하고 있다. 수면트래커를 이용해 장기간 수면상태를 기록한 나라별 수면시간 연구에서도 우리나라 사람의 수면시간이 일본인과 함께 가장 적게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이 부족하면 아침에 아데노신이 아직 남아 있을 것이고 머리가 맑지 않을 것이다. 이때 모닝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고 활력이 느껴지며 나름대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해준다. 커피가 잠이 부족한 현대인에게 없어선 안 되는 ‘최애음료’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하루 일주기 중에 오후 1~4시는 가장 각성도가 떨어지는 시간대이다. 부족한 수면시간은 이 시간대에 더욱 졸리게 만든다. 오후에 졸음과 피로를 쫒아내기 위해서는 추가로 커피 또는 카페인음료를 마실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호주에서 연구결과를 보면 커피소비량이 많을수록 수면시간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커피소비량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은 아닐까?

수면시간뿐 아니라 취침시각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사람의 취침시각은 이미 10대부터 자정을 넘긴다. 밤늦게 자는 수면습관과 연관된 요인은 업무, 사교, 자기 전 스마트기기 이용 등 다양하며 늦은 시간에 커피를 마시는 습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카페인의 반감기는 약 3~5시간 정도이다. 반감기는 섭취한 용량이 반으로 감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즉 완전히 없어지는 상태가 아니라 반이나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소 취침시각의 6시간 전에 커피를 마셔도 잠들기 어렵고 깊은 잠을 방해하며 결국 총수면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녁 식후에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면 수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다. 반면 최근의 메타분석 결과는 커피 한 잔(카페인 약 200mg 정도)이 수면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면 적어도 13시간 전에 마셔야 한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생각보다 커피의 영향이 오래 지속됨을 알 수 있는 만큼 민감한 사람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

저녁에 커피를 마시면 잠이 늦게 오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커피를 마시면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는지를 결정하는 생체시계의 리듬이 지연된다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을 잠들기 3시간 전에 마시면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40분 정도 지연 돼 나타난다.

멜라토닌은 생체시계의 표지자로 멜라토닌이 늦게 분비된다는 것은 결국 수면개시가 늦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커피는 수면압력을 떨어트릴 뿐 아니라 일주기리듬도 지연시켜 결국 평소보다 잠들기 어렵고 숙면을 취하지 못하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앞의 사례와 같이 엄청난 양의 커피를 마셔도 왜 여전히 졸린 것일까? 커피의 주성분인 메틸산틴은 간에서 분해된다. 커피를 많이 마실수록 간 효소활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많이 마셔도 효과가 점차 감소하게 된다.

이는 마치 술을 자주 마시면 술에 잘 취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처음에는 하루 한두 잔이면 충분했지만 각성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점차 먹는 시간 간격이 짧아진다.

커피를 마셔도 왜 조금만 지나면 다시 졸리는 것일까? 커피는 아데노신 수용체를 일시적으로 차단해 각성을 유발한다. 커피를 마신다고 아데노신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아데노신은 자지 않으면 계속 뇌에 누적되고 이것이 점차 더 심한 졸음을 유발하게 된다.

수면이 부족해 커피를 마시면 처음에는 각성효과가 좋지만 점차 그 효과가 감소하는데 부족한 잠을 늘리지 않으면 결국 각성을 유지하기 위해 커피소비량을 늘릴 수밖에 없게 된다.

보다 더 진하게, 보다 더 자주 커피를 마시게 되지만 원하는 각성효과는 이전과 같지 않다. 더불어 습관적으로 저녁 늦게 마시면 생체시계에도 영향을 줘 잠드는 시간이 더 늦어지고 이는 결국 추가적인 수면부족으로 이어져 낮에 더 졸리니 커피소비량은 더 증가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커피는 당뇨, 심혈관질환, 유방암, 간질환, 치매 등에 예방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는 경우 수면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적정량 섭취하는 것이 좋겠다. 커피를 줄이려면 수면시간을 좀 더 확보하고 커피보다 짧은 낮잠으로 오후 졸음을 이겨내보자. 카페인이 없을 때 더 잘 자고 결국 덜 졸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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