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의료정책(完)] 한국형 복지정책 어디까지 왔을까?
[유명무실 의료정책(完)] 한국형 복지정책 어디까지 왔을까?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1.12.16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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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간병통합서비스, 중증환자 간병비 부담 여전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 2곳→17곳 일단 성공적
입원전담전문의, 봉직의보다 낮은 급여 문제
전문간호사제도, 모호한 규정 직역간 갈등↑

우리나라 국민총생산(GDP)는 영국, 프랑스 등 해외선진국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복지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편입니다. 이에 문재인정부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선포, ▲소득 ▲의료 ▲돌봄 등의 분야에서 사회안전망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의료·복지정책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유명무실한 정책도 상당수입니다. 이에 헬스경향은 2021년 한 해 동안 ‘유명무실 의료정책’에 대해 다뤘습니다. 지금까지 지적했던 의료정책들이 과연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아봤습니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가 진정한 복지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제도 신설을 억제하고 실질적이면서도 현실에 적합한 복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우리나라가 진정한 복지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제도 신설을 억제하고 실질적이면서도 현실에 적합한 복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간호·간병통합서비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이용자가 주로 경증환자에 그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전문가와 환자단체는 통합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입실기준 명시화 및 중증도반영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2022년까지 통합서비스 10만 병상에 주력하고 있으며 의학적으로 경증과 중증을 나누는 기준자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결국 정말 통합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중증환자는 매월 300만원 이상의 간병비를 여전히 부담하고 있다.

■노인외래정액제

노인은 경제능력이 떨어져 의료비를 지불하기 어렵다. 이에 정부는 ‘노인외래정액제’를 발표했지만 2017년 의료수가가 인상되면서 노인환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자 내년부터 노인외래정액제를 폐지를 고려, 그 대안으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을 활성화한다. 하지만 자기부담금이 1만5000원에서 7만원으로 증가한 탓에 참여율이 저조하다. 이에 대한내과의사회는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현 10%에서 5%까지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

국내 학대피해아동 보호건수가 늘자 정부는 2017년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을 지정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다 보니 실제로 운영 중인 곳이 별로 없다. 또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해 즉각적 대응이 어려웠다. 이에 복지부는 8월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방안’을 발표, 광역전담의료기관과 지역전담의료기관을 마련했다. 또 각 지자체별로 아동학대전단팀을 신설, 아동학대 대응 정보연계협의체를 구성했다. 그 결과 단 2곳에 불과했던 전담의료기관은 11월 기준 171곳으로 증가했다.

■외국인환자유치기관 평가·지정제

의료관광객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16년 ‘의료 해외진출 및 외국인환자유치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 ‘외국인환자유치기관 평가·지정제(KAHF)’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KAHF의 복잡한 통과기준과 평가비용을 각 의료기관이 부담해야 하는 문제로 외면 받고 있다. 다행히 12월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의원(국민의힘)이 발의한 ‘의료 해외진출 및 외국인환자유치 지원에 관한 법률’이 의결되면서 내년부터는 ‘평가·지정제’에서 ‘평가·인증제’로 변화된다. 또 유치기관에는 운영비용이 지원될 예정이다. 하지만 외국인환자 의료사고피해에 관한 예방책은 아직 수립되지 않았다.

■입원전담전문의

입원전담전문의는 2016년 야간 및 휴일입원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높이기 위해 제정됐다. 문제는 ▲낮은 수가 ▲상설협의체 미구성 ▲인력 ▲제도권 정착 등을 이유로 유명무실해졌다는 것. 하지만 ‘전공의 5년차’라는 오명을 견디고 꿋꿋하게 버틴 입원전담전문의들 덕분에 시범사업의 실효성은 입증됐다. 이에 의과대학은 ‘입원전담의학과’를 개설, 일반병동에서 소아청소년, 산부인과 등으로 확대·편성, 현재 전국의 입원전담전문의는 279명이다. 반면 정부는 아직 별다른 보완책을 발표하지 않았고 이들은 봉직의보다도 급여가 낮다.

■장애인 건강주치의제도

장애인 건강주치의제도는 중증장애인이 주치의로 등록한 의사를 선택해 지속적인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는 제도로 2015년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문제는 주치의를 이용한 중증장애인이 매우 극소수라는 점, 본래 취지와 달리 중증장애인이 주치의를 선택할 수 없고 재활치료나 물리치료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주관부서가 없어 발생한 현상이다. 주치의제도를 도입하려는 의료기관 역시 복잡한 행정절차로 외면하고 있다. 9월부터 3단계 시범사업이 시작됐지만 정부는 별다른 보완책 없이 각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에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주치의제도의 담당부서 교체를 촉구하고 있다.

■전문간호사제도

정부는 간호사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1973년 ‘전문간호사제도’를 추진했다. 전문간호사는 간호실무 3년 이후 석사과정을 마친 뒤 국가자격시험을 통해 배출된다. 하지만 모호한 규정으로 전문간호사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에 복지부는 2019년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개정안이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분야별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하면서 의료법에서 규정한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벗어났다. 특히 마취, 응급 의료진의 반발이 강하다. 마취 전문간호사가 직접 마취를 시행하거나 응급전문간호사가 응급구조사 등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 내년부터 개정안이 시행되는데 직역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성폭력피해자 전담의료기관

성폭력은 피해자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범죄다. 문제는 수치심으로 피해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못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2002년 ‘성폭력피해자 전담의료기관’을 도입했지만 ▲복잡한 행정절차 ▲치료비환급제도 ▲의료기관의 응급피임약 처방거부 등을 이유로 최근 5년 새 12% 감소했다. 정부는 해바라기센터 등과 적극 협조해 문제점을 보완하겠다고 했지만 심의된 사항은 없다. 결국 각 지자체가 지역상급종합병원과 업무체결 등 독자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치매안심병원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는 2050년이면 노인인구 중 15%가 치매환자가 된다. 이에 정부는 2019년 치매안심병원을 지정, 가정에서 돌보기 어려운 중증환자를 돌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5월 기준 치매안심병원은 4곳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인력부족’과 ‘예산부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정부는 국가치매관리위원회를 개소, 치매안심병원 건강보험인센티브 시범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지만 장비지원에만 그치고 있다. 12월 기준 치매안심병원은 단 5곳으로 서울, 경기지역에는 단 한 곳도 없다.

■호스피스·완화의료

호스피스·완화의료는 2004년 시작됐는데 문제는 말기암환자의 경우 병상수, 간호사 부족, 수가부재 등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제2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내년부터 ▲야간전담간호사 관리료 및 야간간호료 확대 적용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관리료수가 신설 ▲자문형 호스피스수가 신설 및 개선 ▲약제급여목록 및 급여상한 금액표 개정 ▲생물학적 드레싱류 등 비급여의 급여화 추진 ▲산정특례대상질환 확대 및 기준개선 등을 심의·의결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여러 병원이 호스피스병동의 문을 닫은 실정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준비되지 않은 공공의료정책을 남발하고 있다”며 “진정한 복지국가를 위해서는 새로운 보건의료제도를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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