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진’ 원칙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의료진, 플랫폼업체 ‘포기선언’ 잇따라
‘재진’ 원칙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의료진, 플랫폼업체 ‘포기선언’ 잇따라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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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시작된 지 2주가 지났지만 ‘재진’원칙 조항으로 의료진과 환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시작된 지 2주가 지났지만 ‘재진’ 원칙 조항으로 의료진과 환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비대면진료가 시범사업에 접어든 지 2주가 지났지만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비대면진료 환자가 ‘재진환자’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점, 사고 발생 시 책임이 의료진에게 있다는 것이 혼란의 핵심이다. 

사실 시범사업이 들어가기 전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초진’과 ‘재진’의 여부로 큰 갈등을 겪었다. 이에 복지부와 의협은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대면진료의 보조수단으로 활용 ▲재진환자 중심 ▲의원급 의료기관 ▲비대면진료 전담의료기관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비대면진료 대원칙’을 합의했다.

단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섬·벽지 거주자,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만65세 이상 노인, 장애인복지법상 등록 장애인, 격리 중인 감염병환자, 휴일·야간 소아환자 등의 경우만 예외적으로 초진을 허용하기로 했다.

■의료진 진료 취소율 40%에 달해

재진환자가 비대면진료를 받으려면 해당 의원에서 30일 이내에 대면진료 여부 확인을 요청해야 하며 의원은 의무기록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단 만성질환자의 경우에만 1년 이내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화상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의료진의 고역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은 의료진의 비대면진료 취소 또는 거부로 이어졌다. 닥터나우가 1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범사업 시작 이후 일주일간 의료진의 진료 취소율은 40%에 달했다. 지난달 평균 17%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또 만18세 미만 소아청소년이 공휴일과 야간에 비대면 초진을 받는 경우 처방 제외, 상담만 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볼멘소리가 많다. 김포에 사는 B씨는 “새벽에 아이가 열이나 비대면 초진을 진행하려 했으나 단순 상담뿐이었다”며 “약이라도 복용해 증상을 완화시켜주고 싶었지만 어렵다는 답변으로 결국 야간에 병원을 찾기 위해 전전했다”고 토로했다.

시범사업의 혼란이 가중된 이유 중 하나는 ‘졸속’으로 세부안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지부는 시범사업 이틀 전에 세부안을 발표했다. 또 복지부는 7일 기존 지침에는 없었던 환자 본인확인 및 수가청구 방법 등 구체적인 환자 확인 방법의 내용을 정리한 ‘추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의료현장의 혼란은 지속되고 있다. 대한내과의사회는 본인 확인 과정이 불명확한 것뿐 아니라 위험 소지가 많다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 상황이다.

대한개원의협의회(이하 대개협)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중단’을 요구한 상태다. 대개협은 성명서를 통해 “50%에 육박한 비대면진료 중간취소율은 시범사업이 졸속으로 시행됐기 때문”이라며 “졸속 시행 중인 시범사업을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면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재진’조항으로 서비스 포기하는 업체 등장

비대면플랫폼 업체들도 졸속으로 처리된 시범사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의 규제샌드박스 승인까지 받은 쓰리제이의 비대면진료서비스 ‘체킷’은 최근 서비스를 종료하기도 했다.

쓰리제이는 비대면 성매개감염병 검사 ‘체킷’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체킷은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 집에서 검사키트로 성매개감염병 검사를 제공, 환자가 키트를 보내면 검사결과를 알려주는 서비스다.

현재 의료법상 성매개감염병 검사결과는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 통보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범사업 전에는 샌드박스를 통해 체킷을 활용하면 전문의가 검사결과를 환자에게 이메일 등으로 통보할 수 있었다.

애당초 쓰리제이는 체킷을 샌드박스 사업으로 시범운영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복지부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에서 재진원칙을 제시하면서 의료진 이탈로 연결, 사업 진행이 어려워졌다.

쓰리제이뿐 아니라 많은 플랫폼 업체들이 사업에서 철수하고 있다. 한의원 비대면진료 플랫폼 ‘파닥’ 역시 서비스 종료를 결정했으며 남성 메디컬 헬스케어 플랫폼 ‘썰즈’도 사업을 종료했다.

쓰리제이 관계자는 “직접 병원을 방문한 기록이 있지 않은 이상 비대면진료는 사실상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다”며 “3개월의 계도기간 동안 서비스를 운영하고자 노력했으나 환자 등록 자체가 막혀버린 지금 더 이상의 혼선을 빚지 않고자 서비스를 종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만큼 전문가들은 비대면진료 플랫폼들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한다. 비대면진료 플랫폼들은 대부분 스타트업이다. 본래 플랫폼업체들은 시범사업을 통해 수익화 모델을 구체화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재진환자에 한정되고 약배송이 금지되는 등 제약이 많아지면서 수익창출이 어려워졌다. 실제로 30여개에 달하는 비대면진료 플랫폼업체 중 현 상황을 버틸 수 있는 자금력을 가진 곳은 굿닥과 닥터나우 정도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장지호 회장은 “시범사업의 혼란은 플랫폼업계와 단 한 번의 논의도 마련되지 못한 채 시범사업이 시작되면서 발생했다”며 “국정과제에 비대면진료 제도화가 있고 복지부에서도 대표사업으로 추진 중이지만 시범사업에 너무 제한이 많아 사실상 운영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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