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하는 의사들] 안개 가득한 ‘무진’ 속 현대인…나를 잃기 전 세상 밖으로 나와야
[창업하는 의사들] 안개 가득한 ‘무진’ 속 현대인…나를 잃기 전 세상 밖으로 나와야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12.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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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석정호 마인즈에이아이 대표(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과거만 해도 의사는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의료패러다임이 질병 치료에서 예방으로 변화하고 디지털기술이 의료현장에 적극 접목되고 있습니다. 이에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의료기술과 기기들을 연구·개발하고자 창업에 뛰어든 의사들이 많아졌습니다. 하나만 잘하기도 힘든 세상, 헬스경향은 ‘창업하는 의사들’이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새로운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의사들을 차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덟 번째 주자는 석정호 마인즈에이아이 대표(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입니다.

석종호 대표는 “인즈에이아이는 크게 정신건강 분석평가 프로그램 ‘마인즈 내비(Minds.NAVI)’와 정신건강 가상현실(VR) 평가·교육·훈련 프로그램인 ‘치유 포레스트(CHEEU.Forest)’를 개발·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석정호 대표는 “마인즈에이아이는 크게 정신건강 분석평가 프로그램 ‘마인즈 내비(Minds.NAVI)’와 정신건강 가상현실(VR) 평가·교육·훈련 프로그램인 ‘치유 포레스트(CHEEU.Forest)’를 개발·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개가 감싸고 있는 도시를 향해 한 사내가 걸어 들어간다.

김승옥 작가의 소설 ‘무진기행’의 도입부다. 안개가 감싸고 있는 도시 ‘무진’, 세상과 단절된 공간으로 여겨진다. 무진에서 안개는 나 자신의 자아를 잃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코로나19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이 더욱 심화돼 내적 고름이 차오르고 있는 형국인 만큼 현대인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소설임이 분명하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안개를 의인화한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마음속에 지독한 안개가 자욱해서 꼼짝도 못 하는 기분. 우울증환자들이 경험하는 증상 중 하나다.

“주변에 우울증으로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을 보며 우울증이 결코 쉽게 볼 질병이 아니란 걸 알게 됐고 돕고 싶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를 잃는 경험을 통해 후회한다. 그는 전공의 시절 동료를 잃었던 경험을 토해냈다. 담담한 말투에서 후회가 묻어나왔다. 후회 속에서 자책감이 일부 느껴지는 것은 기자만의 느낌일까.

우울증이 무서운 이유는 ‘자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인터뷰한 그는 과거 우울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 현재도 간혹 찾아오는 우울감과 사투를 벌이며 우울증환자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해 연구·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석호 마인즈에이아이 대표(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자세한 얘기를 나눴다.

- 마인즈에이아이는 어떤 기업인가.

마인즈에이아이는 마음의 병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예방·관리하고자 창업한 기업이다. 바이오기술과 인공지능의 유합 등 정신건강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2016년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진행된 자살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타액 우울증 진단 프로그램을 개발한 이력이 시발점이 됐다. 이후 교원창업으로 2019년 마인즈에이아이를 설립했다. 크게 정신건강 분석평가 프로그램 ‘마인즈내비(Minds.NAVI)’와 정신건강 가상현실(VR) 평가·교육·훈련 프로그램인 ‘치유 포레스트(CHEEU.Forest)’를 개발·운영하고 있다.

- 타액으로 우울증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마인즈내비를 통해 침으로 우울증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 인즈내비는 프로브(PROVE)검사와 타액호르몬 분석(생체지표)을 통해 우울증상과 스트레스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정신건강분석평가 프로그램이다.

프로브검사는 우울증의 원인과 관련 깊은 정신건강보호·취약 요인들을 통합적으로 평가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리는 침 속 코르티솔(cortisol) 농도를 비대면으로 채취·측정해 이를 분석한 생체지표를 종합평가한다. 코르티솔은 혈압을 유지하고 에너지저장을 촉진하는 기능을 하지만 스트레스 받을 때는 분비량이 증가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또 마인즈내비는 심리평가설문지와 타액호르몬 농도를 분석한 생체지표를 종합평가한 뒤 결과를 양호(Green), 경계(Yellow), 주의(Orange), 질병의심(Red) 등 4단계로 나타내 자살위험성이 높은 우울증 아형 선별진단 정확도를 높였다.

- 마인즈내비의 진단 정확도는.

우울증은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라기보다 유전·생물학적 특성·환경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 중 자살위험이 있는 고위험 우울증환자는 질환 초기 신속한 치료를 통해 극한 상황을 사전에 막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울증 평가는 심리평가 등 객관적 지표보다 주관적 지표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2022년에 73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우울증 위험그룹(23명), 정신건강 양호그룹(20명), 경계 그룹(30명)으로 나눠 아침 기상 직후부터 30분 간격으로 총 3회 타액을 모아 코르티솔 농도를 측정했다. 연구결과 우울증 위험그룹은 정신건강이 양호한 그룹보다 코르티솔 농도가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빠르고 객관적인 지표를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 자살위험성을 낮추는 가상현실 프로그램도 개발했는데.

회사는 가상현실(VR) 프로그램으로 자살위험성을 낮추고 우울증을 치료하는 정서장애치료 소프트웨어 ‘치유포레스트’도 함께 개발 중이다. 치유포레스트는 주요 우울장애환자를 대상으로 ▲어린시절 상처극복하기 ▲자살충동제어하기 ▲마음헤아리기이론 ▲변증법적 행동치료이론 등에 기반한 가상현실을 활용한 자가검사법이다. 무엇보다 자살예방에 큰 이점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상담센터가 존재하지만 정말 필요한 순간 치료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VR을 활용하면 충동조절을 통해 자살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검사결과를 바탕으로 맞춤형 교육과 훈련 VR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마인즈에이아이는 심리평가와 우울증치료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난해 말 식약처로부터 심리평가 소프트웨어 마인즈내비와 정서장애치료 소프트웨어 치유포레스트 등 두 프로그램에 대한 유효성·안전성평가 임상시험계획 승인을 받았다. 진단과 치료 프로그램이 동시에 임상계획 승인된 경우는 디지털의료기기 중 국내 최초 사례다.

-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들었다. 

2022년 가을 우울증이 심하게 왔다. 식약처나 보건복지부 등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의료기기 품목허가 심사, 신의료기술평가 분류와 심사, 혁신의료기기 심사 등 절차가 매우 까다로웠다. 무엇보다 같은 기관 내 부서 간 연결이 잘 안 되고 유관기간들의 소통이 유기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 사업과 병행해 진료를 진행하다 보니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금 정신건강학과에서는 대부분 약물치료하면서 2~3분 진료밖에 못한다. 오늘 오후에도 40명이 예약돼 있는데 3시간 동안 40명을 보려면 5분 진료 10분 진료가 최대다. 치료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다 잘못될 것 같아 심한 불면증과 불안감이 엄습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우울증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후 후배 정신과 병원을 찾아갔다. 우울증이 맞았다. 이렇게 살면 큰일 날 것 같아 합창단을 시작했다. 지금은 매우 좋아졌다. 정신건강은 아직 미충족 수요가 많은 분야다. 우울증 클리닉을 15년 해오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회사에 담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땐 혼자 고민하지 마세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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