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과의 공감 위해선 멘토 아닌 ‘깐부’ 돼야”
“탈북민과의 공감 위해선 멘토 아닌 ‘깐부’ 돼야”
  • 추미현 객원기자 (qiumeixian@k-health.com)
  • 승인 2022.11.07 0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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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인사이트] 김영수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 탈북과정서 생긴 트라우마 커...정신건강 돌봄 시급해
· 병원서 의료진과의 소통도 문제...실질적 도우미 필요

단일민족국가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우리나라의 인구변화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습니다. 바로 다문화가족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의 보건복지문제, 거주문제 등 숨겨진 이면을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이에 헬스경향은 ‘다문화 인사이트’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다문화가족 및 현장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와 함께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추후 다문화사회로 성장하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김영수 교수는 “탈북민을 위한 정책 마련도 중요하지만 탈북민의 삶과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고 그들이 정책수혜자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심한 관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수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올 2월 말 정년퇴직하기 전까지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탈북학생동아리인 ‘우리하나’의 지도교수를 맡았고 현재 사단법인 ‘따뜻한동행’이 주관하는 탈북청년 양성프로그램인 ‘통일인재아카데미’의 교장직을 맡고 있다.

또 사단법인 ‘새롭고하나된조국을위한모임’(새조위)의 문화콘텐츠단장을 맡아 7년째 ‘북출이의 좌충우돌’ ‘고슴도치’ ‘자강도의 추억’ 등의 연극을 탈북민과 함께 하고 있으며 우리 대중가요를 북한말로 바꿔 부르는 북한사투리노래자랑도 열고 있다. 김영수 명예교수를 만나 북한이탈주민의 생활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 북한이탈주민의 개념과 범위는 어떻게 되는가.

휴전 이후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에 정착한 사람들은 그간 귀순용사, 새터민, 북향민, 탈북민 등으로 불렸다.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에서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지역을 벗어난 후 외국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사람’이라는 법적 개념이 정해졌다. 이는 북한을 탈출해 중국이나 미국 등의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북한이탈주민’으로 보지 않는다는 엄격한 규정이다. 통일부는 2022년 11월 현재 북한이탈주민의 수를 약 3만4000명으로 발표했지만 사망과 실종자를 제외하면 실제 생존자는 3만명이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단체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북한정치’를 전공하면서 “북한도 안 가보고 전공하느냐?”는 질문이 가장 아팠다. 이후 북한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탈북한 사람들을 악착같이 쫓아다녔다. 그때가 1990년이다.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듣다 보니 남한사회에 정착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

‘하나원’ 같은 정착지원시설이 필요하고 이들을 돕는 사회지원시스템이 갖추는 것이 통일을 이루는 또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초등학교를 여덟 번 전학하는 과정에서 왕따를 당했던 문화적 소외감도 작용한 것 같다.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정책과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하는 연극, 노래자랑, 학교 등을 열고 있다.

- 국내 북한이탈주민의 보건·복지·건강정책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탈북민들에게 필요한 정책 반영은 비교적 늦지 않다. 오히려 정책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지원제도를 몰라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홍보가 빨리 이뤄져야 하는데 이 부분이 아직 미미하다. 또 은둔하고 있는 탈북민이 전체의 1/3 정도 되다 보니 사회와의 접촉기회도 매우 적다.

병원에서 이뤄지는 의료진과 탈북민의 소통도 문제다. 의료진이 탈북민의 얘기를 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탈북민의 기대치가 커 의료진에게 실망도 많이 한다. 자신을 무시한다고 불평하는 사례도 종종 일어난다. 오래 기다렸다가 진료받았는데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청진기도 대지 않고 컴퓨터 화면만 보다가 내보냈다는 불평이 대표적인 예다. 북한에서는 청진기로 주로 진찰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안 하던 목욕도 하고 갈 정도로 공을 들였는데 의사가 청진기도 안 댔다는 것이다.

- 현재 북한이탈주민의 건강상태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의료·복지서비스를 받는 데 애로사항은 없나.

북한에서의 삶과 탈북과정의 어려움이 겹쳐 대부분 건강이 안 좋다. 특히 탈출 관련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적인 아픔이 크다. 한국 정착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반면 대한민국 의료서비스 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만과 오해도 적잖다. 탈북민 혼자 새로운 의료시스템에 적응하고 활용하기란 쉽지 않다. 필요할 때 조언하고 도와주는 의료관련 도우미가 필요하다. 탈북민을 위한 정책 마련도 중요하지만 정책수혜자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리방안이 필요하다.

초기정착과정인 하나원 교육과정에서 얘기해도 소용없다. 빨리 사회로 나가길 원하는 피교육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정착생활단계에서 도와줄 수 있는 조력자가 필요하다. 고령자 탈북민에 대한 정책도 마련해야 하며 무연고중증장애인을 케어할 수 있는 간병인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1인가구로 살다가 사망하는 경우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제도도 필요하다.

- 국회나 정부에 바라는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정책은.

전체의 70% 이상인 탈북여성들의 정신건강관리를 위한 별도의 의료시스템이 필요하다. 정착생활을 하다가 탈북관련 트라우마로 삶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탈북민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매우 싫어한다. 북한에서는 이 치료를 받는 사람을 ‘49호(7곱하기 7의미)’로 부르면서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에 가는 버스 번호가 77이어서 생긴 것이란다.

우울증치료가 필요한 탈북민이 많다는 점에 비중을 두고 경제뿐 아니라 정신적 자활을 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무연고중증탈북민환자를 케어하는 간병인제도도 시급하다. 몇 달 동안 면회조차 오는 사람이 없는 환자를 간병하겠다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특정탈북민을 사흘 이상 간병하면 행정안전부 지원 간병비를 지출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 현장에서 간병인을 구하느라 매우 힘들었던 경험도 있다. 국회와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을 신속하게 보완해주기 바란다.

- 향후 북한이탈주민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면.

먼저 우리 국민은 그들의 멘토가 아닌 ‘깐부(친한 친구, 짝꿍, 동반자를 이르는 말)’가 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탈북민을 나와 동격으로 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 ‘북한을 알아야 통일이 보인다’는 시각에서 탈북민의 삶을 공감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두 마리 개(犬), 편견과 선입견을 ‘백문이 불여일견’으로 바꿔야 한다. 이런 마음을 갖춘 다음 탈북민 사회공헌활동에 동참해야 한다. 뜨거운 열정만 있다고 섣불리 뛰어들면 탈북민의 마음만 상한다.

또 탈북민에게는 봉사의 대상에서 벗어나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 봉사가 주는 보람과 뿌듯함을 느껴야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은둔하고 있는 탈북민을 바깥사회로 나오게 해 사람과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탈북민 휴대폰에 남한의 지인이 몇 명 있는지를 보라. 남한 지인이 늘어나 그들도 ‘우리’가 되게끔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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