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속에 살아가는 난민들,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해야”
“불안 속에 살아가는 난민들,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해야”
  • 추미현 객원기자 (qiumeixian@k-health.com)
  • 승인 2023.11.2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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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인사이트] 김창훈 법무법인 감천 변호사

단일민족국가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우리나라의 인구변화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습니다. 바로 다문화가족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의 보건복지문제, 거주문제 등 숨겨진 이면을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이에 헬스경향은 ‘다문화 인사이트’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다문화가족 및 현장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와 함께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추후 다문화사회로 성장하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김창훈 변호사는 “난민들을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시혜대상이나 혐오·차별의 대상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주민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훈 변호사(사법연수원 42기 수료, 법무법인 감천)는 대한변협 법률구조재단 ‘우수수행변호사상’을 수상했으며 서울특별시 ‘공익변호사’로 위촉돼 활동했을 만큼 소외계층의 권익을 위해 애써왔다. 특별한 사명감으로 난민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의 모든 행동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배 있었다. 마주 앉은 기자가 읽고 보기 편하게 글자를 거꾸로 써주는 모습과 대한민국에서 성실히 살아가고자 하는 난민재신청자들의 상황을 적극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모든 인간에 대한 사려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의뢰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변호사의 의무’라고 말하는 김창훈 변호사.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와 행복추구권’의 규정을 난민과 난민재신청자도 누릴 수 있게 돕는 그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 난민을 변호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변호사 배지를 처음 달았을 때의 마음이 생각난다. 사건 수임만을 욕심내지 말고 ‘내 사건이었다면 어떻게 처리할까’를 염두에 두면서 상담부터 소송 마무리까지 직접 챙기겠다고 결심했다. 지금도 사무장 없이 혼자 외국인 의뢰인들과 직접 소통하며 일하고 있다.

새내기 변호사였을 때 다른 사건으로 서울행정법원에 방문했는데 많은 외국인이 서류를 들고 황망해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도 제가 변호사처럼 보였는지 소송구조결정문을 들고 와서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한국말도 서툰데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열심히 설명해주다가 소송구조가 필요한 사건을 맡게 됐다. 루레인스프라는 아프리카 쪽 20대 남성 난민이었는데 지금도 가끔 SNS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이렇게 난민 소송구조를 도와주며 그들과 함께 한 지 벌써 10년이나 지났다. 난민인정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이어서 많이 승소하지는 못했지만 ‘제 작은 능력이 쓸모가 있구나’라는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면서 지금까지 이 일을 해오고 있다. 

- 국내 거주하는 난민의 규모는.

난민신청자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2013년 난민법 시행 이후 난민신청건수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난민인권센터에서 올해 4월 공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22년까지 누적된 난민 신청은 총 8만4992건이며 누적 난민인정자는 총 1331명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총 1만1539건의 난민 신청이 있었으며 총 175명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2022년도 한국의 난민인정률(해당연도 심사결정자 수 대비 인정자 비율)은 2.03%이다. 1%를 넘지 못하던 난민인정률이 3년 만에 2% 정도로 상승했지만 여전히 희박한 확률이다.

- 난민들이 당면한 어려움은 무엇인가. 

난민으로 인정된 외국인들은 난민법상 대한민국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본국에 두고 온 가족들이 위험한 상황에 부딪힐까 봐 항상 마음 졸이고 있다.

문제는 ‘난민재신청자’이다. 이들은 난민신청을 했다가 거부된 후 재신청하고 신청여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단순 체류만 가능하기 때문에 생계비 지원 신청, 취업 허가,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 이용 등의 대상에서 제외돼 열악한 여건에서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불안정한 신분과 빈곤으로 착취나 범죄에 노출될 위험도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심리적인 불안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난민신청자는 난민인정 신청 6개월이 지난 후부터 취업허가를 받을 수 있고 일할 자격이 생긴다. 난민재신청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제도권 안에 있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재신청자도 이 기간에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며 이 기간을 관리·통제할 시스템도 뒷받침돼야 한다.  

- 난민과 난민재신청자들의 신체·정신건강도 우려된다. 현실은 어떠한가.

난민들은 본국의 정치적 상황이나 전쟁, 종교적 이념, 원치 않는 강제결혼과 할례 등의 특정 이유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조국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본국에서 폭력과 박해에 노출돼 외상후스트레스 등 많은 정신질환에 걸릴 위험이 크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상담치료가 필요히다.

난민재신청자들은 신분을 상실한 상황이기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병원비 부담으로 이어져 결국 의료기관 및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떨어뜨린다. 생명과 직결된 것은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미등록외국인에게도 신분 노출 없이 백신 접종을 한 것이 좋은 예이다.

- 우리나라는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한 국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원인은 무엇인가. 

난민신청을 했는데 인정받지 못하면 증거를 보완해 다시 신청해야 하는데 이때 난민 스스로 난민임을 입증해야 한다. 게다가 입증해야 하는 수준도 높아 난민인정률이 낮은 것이다. 게다가 6~7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가 난민소송비용을 지원해줬지만 이마저도 사라졌다. 또 난민심사의 초점이 ‘난민이 아님’을 찾는 것에 맞춰져 있어 난민신청자의 대다수가 난민재신청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빠른 심사만을 강조해 실질적인 행정서비스체계가 미흡하고 관련 기관 간에 협업이 어려운 것도 문제이다.

- 난민과 난민재신청자들이 한국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지금까지 만난 수많은 난민신청자는 밝고 선한 성품을 갖고 있었다. 우리 문화를 동경하며 한국 사람들을 좋아한다. 우리 국민은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깊은 혈통주의로 외국인을 경계하는 성향이 있다. 일부 국민은 난민들이 잠정 범죄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일반시민들의 마음은 많이 열려있다고 본다. 난민재신청자들이 이 복잡한 서울 지리를 어떻게 아는지 사무실 주소만 알려줬는데도 잘 찾아온다. 알고 보니 우리 사무실에 오기 위해 길을 물어보면 시민들이 친절하게 알려주고 심지어는 손을 붙잡고 사무실까지 데려온 분들도 많이 있었다.

온라인이나 방송매체를 통해 난민이 무조건 시혜를 베풀어야 하는 대상 또는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한국의 고령화·저출생 상황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갈 주민으로 받아들이는 ‘이해‘가 확산됐으면 좋겠다.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출입국사무소의 통·번역에 관한 것이다. 현재 출입국사무소에서 통역하시는 분들은 상근직이 아니다. 난민신청 후 난민면접을 할 때만 오는데 이것만으로는 실질적으로 난민을 돕는 데 한계가 있다. 상근 직원이 필요하며 난민신청 관련 서류들을 난민들의 본국 언어로 번역하고 제공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마련되려면 국민세금이 들기 때문에 정부와 관련부처에서 많은 연구와 개선방안이 도출돼야 할 것이다.

- 난민과 난민재신청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난민은 정치·종교적 견해, 인종·국적 차이로 본국으로 돌아가면 생명의 위험에 처한다. 우리나라의 법·제도 때문에 ’안 되니 돌아가라’라는 것은 인도주의적이지 못한 행동이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정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들의 상황을 들어주고 대변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선진국의 모습이며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 이다. 

난민과 소수자들의 인권에 힘쓰는 변호사들을 보면 늘 존경스러운 한편 저의 부족함도 많이 느낀다. 하지만 도와달라는 외국인들이 있는 한 이 일을 계속 할 것이다. 특히 난민재신청건은 ‘내가 해서 끝을 봐야겠다. 죽을 때까지 해보자!’라고 다짐했다. 제가 손잡아 드릴 테니 혼자 불안에 떨지 말고 적극 문을 두드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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