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 약사가 알려주는 중독성약물 A to Z] 수면제 ‘졸피뎀’,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
[배현 약사가 알려주는 중독성약물 A to Z] 수면제 ‘졸피뎀’,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
  •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ㅣ정리 ·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3.06.3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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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대한민국에 잠 못 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2021년 심평원 자료에 의하면 수면장애로 진료받은 사람은 약 67만명이나 되며 갈수록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수면장애를 앓는 이유는 스트레스, 노령화, 알코올중독 등 물질 남용, 환경적 변화 등 매우 다양하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증가한 만큼 수면제 처방 역시 늘고 있다. 수면제의 대표 약물인 졸피뎀만을 예로 들어보면 2018년에서 2019년까지 1년간 처방약 개수는 1억3800만개, 처방받은 환자수는 176만명이라고 한다. 국내 졸피뎀 소비량이 세계 6~7위 수준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수면장애는 주로 나이 들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단순히 어른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분장애나 ADHD보다 적기는 하지만 수면장애로 치료받은 14세 미만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증가율은 오히려 ADHD보다 높은 수준이다. 아이들은 웬만해선 병원 진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청소년이 수면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오죽하면 병원에 갔을까?’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처방받은 약을 불법 유통하면 마약사범이 된다

잘 못 잔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우리 뇌는 수면 중 여러 가지 기억을 정리하고 새로운 기억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다. 이뿐 아니라 성장호르몬을 분비해 성장을 돕고 고장 난 몸의 여러 조직을 회복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제대로 자지 못하면 신체적 손상뿐 아니라 우울증 등 정신적 손상도 입을 수 있다. 수면장애가 있다면 전문가의 지시에 따라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다.

잠이 안 올 때 사용하는 약물은 바로 수면진정제이다. 수면진정제로 사용되는 약물들은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이 약물들 또한 중독성약물이자 마약류에 속하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마약류는 본인이 직접 처방받지 않고 다른 사람의 약을 유통·보관·판매·복용하면 마약사범이 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요즘 SNS 등을 통해 마약류가 유통되는 경우들이 많지만 불법인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필자도 그 심각성을 알아보기 위해 트위터 등에 ‘나비약’과 같은 검색어를 입력한 뒤 결과를 살펴본 적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 검색됐고 그중 남은 약을 판매한다거나 약을 구한다는 내용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최소한 이러한 방식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올해 식욕억제제 펜터민을 SNS로 판매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적발되기도 했는데 피의자들 역시 ‘불법인 줄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마약사범이 되지 않으려면 향정신성의약품을 임의적으로 사고파는 것이 불법이라는 인식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왜 수면제에 의존하게 되는 것인가 

사람들은 왜 수면제에 의존하게 될까? 억제성 뇌신경 GABA 수용체에 그 비밀이 있다. 우리 뇌는 뇌를 자극하는 흥분성 신경과 지나친 흥분을 줄여주는 억제성 신경이 존재한다. 수면제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약물은 벤조디아제핀류인데 이 약물은 가바 수용체에 작용해 뇌신경 전기 자극을 줄여서 뇌가 흥분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뇌가 흥분하지 않게 되면서 예민한 신경을 줄여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잠을 잘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수면진정제를 사용하면 신체적 의존성보다는 정신적 의존성이 생기게 된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도파민 분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보통 흥분성 약물을 복용할 때 증가하는 도파민이 왜 억제성 약물인 수면진정제로 인해 늘어난다고 하는 것일까? 이는 GABA수용체가 단일 구조가 아닌 복합 구조를 갖고 있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보통 수면제로 많이 사용되는 벤조디아제핀의 경우 GABA수용체 일부에 작용해 수면·진정효과를 가져다준다. 상대적으로 복측 분절 영역(VTA) 도파민 신경에 작용해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물론 흥분성 중독약물보다 반응이 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도취감이나 흥분, 쾌락을 유발해 중독에 이르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의 진단 없이 수면진정제를 남용하면 결국 약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졸피뎀의 가장 큰 문제는 내성과 단기기억상실

수면제로 많이 처방받는 졸피뎀은 무엇이 문제일까? 졸피뎀 역시 벤조디아제핀류로 GABA 수용체에 작용해 수면효과를 내는 약물이다. 수면유도효과가 매우 빠르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숙취현상이 덜 하기 때문에 많은 불면증환자에게 처방되고 있다.

하지만 졸피뎀은 내성이 쉽게 생긴다. 내성은 처음 약물 양보다 더 많은 양을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처음에는 잠이 좀 잘 안 와서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지만 결국 약 없이는 잘 수 없는 강한 의존성이 생기는 것이다.

졸피뎀 복용 뒤 단기기억이 없어지는 증상은 정말 심각하다. 다음은 대한약사회 환자안전약물관리본부 지역의약품안전센터에 실제 보고된 이상사례 중 일부 사례에 대한 내용이다.

50~60대 여성으로 잠들기 힘들고(입면장애) 수면유지 또한 어려워 졸피뎀을 처방받았다. 환자는 새벽 4시경 약물을 복용하고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 평소처럼 생활했는데 이후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했다. 환자는 이날 오전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금전적인 피해를 입었는데 통화 중 매우 평온한 상태였기에 이를 지켜보던 배우자는 출근한 자녀와 통화하는 것으로 생각해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집에 돌아온 자녀에게 통화 내용을 물어보니 통화한 적이 없다고 했으며 놀란 배우자가 환자에게 누구와 통화했는지 물어보니 기억하지 못했다. 환자의 가족들은 보이스피싱을 의심해 신고했으나 이미 수차례의 소액결제를 통해 큰 금액의 손실이 발생한 상황. 환자는 약물 복용을 중단했고 이후 이러한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즉 약에 의해 기억과 판단이 소실됐다고 볼 수 있었다.

59세 남성으로 내원 일주일 전 갑자기 하루 동안 일어났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증상 발생 이틀 전 환자는 개인의원에서 불면증으로 졸피뎀 10mg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당시 환자는 졸피뎀을 복용하고 수면 후 아침에 일어나 업무차 대전으로 내려갔던 것까지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대전에서 수행한 업무나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회사 동료는 기억을 잃은 당시 환자는 여러 활동을 수행했는데 약간 반응이 느리고 반복적으로 업무를 물어보며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시간은 대략 8시간 정도로 환자는 저녁 식사 후부터는 비교적 생생하게 일어난 일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여러 검사결과 뇌에는 전혀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졸피뎀 복용 후 발생한 기억상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뿐 아니라 ▲저녁에 졸피뎀을 먹고 아침에 운전한 뒤 사고를 냈다거나 ▲잠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폭식증이 생겨 냉장고에 있는 비조리 식품까지 먹어치운다거나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거나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는 등 몽유병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은 복용량이 높을수록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는데 내성이 생기는 만큼 잘 때 졸피뎀에 의존하면 지속적으로 용량이 높아질 수 있고 부작용도 그만큼 심해질 수 있다.

졸피뎀은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졸피뎀은 불면 개선 외에 범죄에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2016년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성범죄에 가장 많이 사용된 약물’이 졸피뎀이라며 실제 사례를 실어 놓았다.

- 30대 최모 씨는 전 직장동료인 A씨(25·여)와 술을 마시다 알약 한 정을 비타민으로 속여 먹게 했다. A씨는 곧 정신을 잃었다. 최씨는 A씨를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고 신체를 몰래 촬영했다. 최 씨는 경찰에 붙잡혔고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 40대 카페 업주 손모 씨는 여종업원에게 수면유도제를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뒤 성폭행했다. 손 씨의 악행은 무려 16명에게 41차례나 반복됐다. 피해 여성 상당수는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었다. 손 씨는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두 사건에서 공통으로 사용된 약물이 바로 졸피뎀이다.

<출처: ‘성범죄에 가장 많이 악용된 약물’은 졸피뎀. 2016년 2월 28일 연합뉴스 기사>

졸피뎀은 색이 없고 크기가 매우 작아 가루로 만들어 음료 등에 녹이면 거의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졸피뎀은 작용시간이 30분 이내며 지속시간은 6~8시간이다. 특히 알코올과 병용하면 진정효과가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술자리 등에서 정신을 잃게 해 범죄 목적으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료를 마신다거나 술자리나 식당, 카페 등에서 자리를 비우고 돌아온 뒤 남아 있는 음료나 술을 절대 마시지 말아야 한다.

비교적 우려가 적은 ‘라 목’에 들어 있다고 하지만…

향정신성의약품은 그 위험도에 따라 ‘가~라 목’으로 분류돼 있다(단 혼합성분의 경우 ‘마 목’으로 분류). 사실 졸피뎀 같은 벤조디아제핀류는 향정신의약품 분류 ‘라 목’에 들어간다. ‘라 목’은 오남용 우려가 보다 적고 의료용으로 사용하며 보다 신체적·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킬 우려가 적은 약물에 속한다.

하지만 우려가 적다고 해서 오남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려가 적든 크든 향정신성의약품은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기전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졸피뎀 역시 오남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일부 중독성도 우려된다. 무엇보다 타인을 무력화시키는 범죄에 사용될 수 있어 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약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의료기관에서는 철저한 환자 확인과 함께 과잉 중복구매하지 않도록 투약 관리를 잘해줘야 할 것이다. 환자도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약사의 복약지도에 따라 약물을 사용하며 임의로 복용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향정신성의약품은 ‘잘 쓰면 약, 잘 못 쓰면 진짜 독이 돼버린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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