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생명은 흥정 대상이 될 수 없다”
“환자 생명은 흥정 대상이 될 수 없다”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4.02.2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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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입학정원 확대 방침에
전공의 반발로 의료공백 심각
응급실부터 외래까지 초비상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단체의 집단행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오가고 있다(사진=경향신문 조태형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단체의 집단행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오가고 있다(사진=경향신문 조태형 기자).

정부가 2025년부터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00명 더 늘리기로 결정하면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반발, 보건복지부는 27일 오후 7시 기준 주요 99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사직서 제출자는 소속 전공의의 80.8%인 9937명이었다고 28일 밝혔다. 근무지 이탈자는 이들 병원 소속 전공의의 73.1%인 8992명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아닌 보건의료위기 때문에 재난경보가 심각으로 올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료공백 심각...응급환자, 암환자 ‘초비상’

전공의 파업으로 생긴 의료공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갔다. 대학병원들은 경증환자의 퇴원을 유도하고 신규입원을 최소화하고 있다. 수술일정을 연기하는 곳도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수술실 22개 중 10개만 운영 중이다. 또 빅5병원 중 하나인 서울아산병원은 근무중단 첫 주에 수술 30~40%를 축소했고 40~50%까지 조정할 예정이다.

응급실이 가장 큰 문제이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은 뇌출혈수술도 중환자실이나 마취과 지원 여부에 따라 부분적으로만 수용 가능하다고 공지했다. 또 성인 위장관응급내시경이나 담낭담관질환 분야는 신규환자를 아예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응급실뿐 아니라 일반외래환자도 상황이 다급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암 환자 A씨는 “두 달 전 외래와 MRI촬영을 예약했는데 진료 당일 목포에서 서울로 KTX를 타고 올라오는 도중 외래연기문자를 받았다”며 “너무 막막한 마음에 병원에 방문했지만 결국 진료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에 정부는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업무를 중단한 전공의들에게 29일을 마지노선으로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은 2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지난주부터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29일까지 병원으로 돌아온다면 지난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환자생명은 흥정 대상 될 수 없어”

의사단체의 직역이기주의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일 한 의사 커뮤니티에 전자의무기록지 자료를 지우거나 비밀번호를 바꾸라는 내용이 담긴 ‘병원 나오는 전공의들 필독’이라는 글이 게재돼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면서 여론도 싸늘해졌다.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또 의사단체는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 대한의사협회는 “현 상황은 2000년 의약분업사태와 비견될 정도로 비상시국”이라며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재검토하는 것이 14만 의사의 목표로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독일, 영국, 일본, 프랑스 등 많은 국가가 고령화에 대비해 의사 수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의대정원 확대에 반발해 파업에 나선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는 프랑스 등 각국의 의사파업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지만 ‘의사증원’이 파업의 이유인 경우는 본 적이 없다며 일본은 의사협회가 의대정원 증원에 오히려 찬성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정형선 교수는 “이전에 의대정원 증원을 하려다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정부가 굴복했던 사례는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선배교수들의 일침도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권용진 교수는 23일 SNS를 통해 ‘전공의 선생님들께’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그는 “위기단계 격상은 정부가 상당한 수준의 권한 행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강력한 행정처분을 빠르게 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여러분 중 상당수가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부산대 의대 정영인 명예교수는 “환자의 생명은 절대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의사는 대체인력이 없고 결국엔 구제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줘 직업윤리가 실종되는 상황까지 온 것”이라고 일갈했다.

한편 26일 의사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3일 오후 6시 기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신규 접수된 피해사례가 총 38건이라고 밝혔다. ▲수술지연 31건 ▲진료거절 3건 ▲진료예약 취소 2건 ▲입원지연이 2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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